서울 정동 세실극장이 42년 만에 문 닫는다. 세실극장은 대학로가 ‘연극의 메카’로 떠오르기 전 1970~1980년대 우리나라 연극의 중심지였다.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2013년 서울시는 세실극장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미래유산도 경영난 앞에서는 무력했다.
김민섭 세실극장장은 29일 “임대료 등 매달 운영비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운영을 포기하기로 했다”며 “내년 1월 7일까지 공연하는 비언어극 ‘안네 프랑크’를 끝으로 극장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세실극장의 월 운영비는 월세 1,300만원을 비롯, 노후된 시설 보수비 등을 합하면 2,400만원에 달한다. 대학로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소극장 임대료가 800만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최소한 대학로 소극장에 비해 3배 이상의 수익을 내야 유지할 수 있는 구조이다. 1년에 10여편씩 매일 공연을 이어나가도 유지가 어려운 이유다. 더구나 대학로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다른 극장과 달리 세실극장은 정동에 홀로 떨어져 있다.
세실극장 운영난 소식이 외부에 알려지자 장소와 건물의 역사성을 감안해 서울연극협회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한국본부가 나서기도 했다. 지난달 방지영 서울연극협회 부회장과 김숙희 아시테지 한국본부 이사장은 세실극장 건물주인 대한성공회와 만나 극장 운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월세 금액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성공회 쪽도 딱한 사정은 알지만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성공회 관계자는 “세실극장의 역사성과 가치는 잘 알고 존중하지만 건물이 낡아 대대적 보수공사가 필요한데다, 우리 역시 재정 악화 때문에 임대료를 더 이상 낮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성공회는 극장을 사무실로 개조해 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섭 세실극장장은 “처음 지을 때부터 극장으로 쓰려는 의도 아래 지어진 건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아니라 공공단체 등 다른 누구라도 극장 운영을 이어가길 바랬는데 그마저 벽에 부딪혔다”면서 “문화예술적 토양을 제공하는 공공재로써 극장을 바라봐주었으면 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영난으로 인한 극장 폐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 최초 민간 소극장 ‘삼일로창고극장’은 2015년, 지난 4월에는 연희단거리패의 게릴라극장도 문을 닫았다. 세실극장은 1976년 320석 규모로 개관했다. 연극인회관이 대학로 문예회관으로 가기 전까지 세실극장에 머물렀고, 옛 대한민국연극제(현 서울연극제) 1~5회도 세실극장에서 열리는 등 한국연극의 심장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뒤 후원 등이 끊기면서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3년 세실극장을 맡은 김 극장장은 대학로와 차별화를 위해 아동극과 청소년극을 무대에 올리고, 덕수궁을 끼고 있는 위치를 이용해 관광객용 공연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이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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