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여겨지는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한 시국을 패러디했다. ‘기운’ 같은 단어 사용으로 주술적 느낌이 나 구설에 올랐던 박 대통령의 연설문 문구부터 최씨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불거진 어수선한 현실까지 다뤄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그래비티’ 특집에서 제작진은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이란 자막을 내보냈다. ‘무한도전’ 멤버인 방송인 박명수가 헬륨 가스가 든 풍선을 달고 무중력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다. ‘우주’와 ‘기운’이란 단어는 박 대통령이 연설문에 주로 쓴 표현으로, 특정 종교와 연관된 최씨가 연설문 작성에 개입한 결과라는 의혹이 나왔던 말들이다. 박명수가 공중으로 떠오른 장면에선 ‘상공을 수 놓는 오방색 풍선’이란 문구를 넣었다. 오방색 또한 최씨의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에 저장된 파일 이름 ‘오방낭’이 공개된 뒤 새삼 주목 받고 있는 논란의 단어다. 오방낭은 동양의 오행사상이 깃든 흑, 백, 청, 홍, 황 오방색으로 만든 주머니로, 2013년 박 대통령 취임식 때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 행사에 등장했다. 음양오행설에 바탕을 준 주술적 시각에서 기획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무한도전’ 제작진이 풍선 색 자막에 담아 다시 한 번 부각한 것이다.
제작진은 박명수가 공중으로 떠오르기 직전 흥분된 상태에서 “온 나라가 다 웃음꽃이 피고 있어요”라고 하자, 바로 ‘요즘 뉴스 못 본 듯’이란 자막을 크게 부각해 웃음을 줬다. ‘무한도전’이 전파를 타던 시간에는 ‘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 시민들이 진상 규명과 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 시위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벌이고 있었다.
이 뿐이 아니다. 방송에선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이란 자막까지 나왔다. 박명수가 자신에 불리한 얘기는 못 들은 척 하고 딴청을 부리는 상황에서다. 최씨의 국정 농단 의혹으로 가중된 박 대통령의 불통의 정치에 대한 성난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대부분 ‘시원했다’는 반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는 ‘‘무한도전’은 하늘에서 우릴 내려보는구나, 최순실은 권력으로 내려다 보고’(gg48****), ‘방송에 10월 27일 찍은 거라고 나왔어요. 작정하고 찍은 느낌이네요’(mjsr****), ‘무한도전 패기 좋다. 지난 주 ‘대통렁은 지금 누구예요’에 이어’(Appleyoung****) 등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22일 ‘무한도전’에선 정준하가 ”대통령은… 지금 누구예요?”라고 묻는 말이 전파를 탔다. 최씨가 대통령 위에서 권력을 휘두른 ‘제1의 권력’ 이라는 소문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큰 화제가 됐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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