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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연인’을 보는 새벽

입력
2017.02.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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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개그맨이 번갈아 리포터로 등장해서 산에서 혼자 사는 중노년 남성들을 찾아가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리모컨을 돌리다 보면 어딘가에서는 꼭 재방영을 하고 있다. 종편 최장수 교양 프로그램이고 시청률도 아주 높단다. 나도 자주 본다. 이승윤, 윤택 두 리포터는 예의 바르고 인정스럽다. 도시에서 찾아간 자가 가질 법한 호기심 말고도 낯섦과 불편함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1박2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땔감을 장만하거나 약초를 캐는 등 주인공들을 도와 산 생활에 필요한 일을 열심히 한다. 소찬이어서 더 특별한 저녁을 앞에 두고 빨리 찾아드는 산중 어둠 속에서 이런저런 사연을 듣는다. 밥도 참 맛있게 먹는다. 좁은 방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잔다. 떠나오는 발길은 정말 아쉽고 미안해 보인다. 입고 있던 옷을 벗어주기도 하고 오래 뒤를 돌아본다.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을 편하게 해주는 데는 두 리포터의 몫이 크지 싶다. 그이들은 이 프로그램이 ‘자연’이라는 말로 가리고 있는 불편한 현실에 대해 시청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맞춤한 거리(距離) 같기도 하다. 말의 좋은 의미에서 그이들은 그 거리를 정말 잘 ‘연기’해준다.

사연을 들어보면 거기 사는 분들이 프로그램의 제목처럼 적극적으로 ‘자연’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다. 사업의 실패나 직장 문제 등 경제적 이유가 많고 그 와중에 겪게 마련인 인간관계의 환멸 같은 것도 말의 행간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대개 이혼을 했거나 가족과는 떨어져 있다. 산속에서 혼자 사는 자유로움이나 맑은 공기와 물 등 이런저런 자연의 혜택을 말할 때보다 리포터의 질문에 마지못해 답하는 “외롭지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는다. 한눈에 봐도 불편한 것 투성이고 누추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생활이다. 잘 적응한 분들도 있고 약초나 버섯 등속이 적으나마 생활의 밑천이 되는 경우도 있는 듯하지만 어쨌든 최소한의 경제 문제는 계속 따라붙을 테다. 제작진과 리포터를 떠나 보낼 때 그이들이 애써 담담하게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런 프로그램이 정작 그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잔혹한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귀농이나 귀촌이 적극적인 삶의 선택 방식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선배 한 분은 그렇게 생활의 터전을 바꾼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어간다. 어려움이야 오죽 했을까만, 아이들도 잘 크고 잘 정착한 경우일 테다. 그 선배는 자신의 선택에 아무런 말도 덧붙이려 하지 않았지만, 잃어버린 삶의 가치에 대한 일군의 세대적 지향이 하나의 대안적 흐름으로 존재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고 설계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고학력 엘리트 귀농’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말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이들은 아마도 운 좋게 능력껏 탈출하는 경우일 테다. 그거야 어쨌든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한국 사회에서 배제와 탈락의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이들이 있을까. 진입조차 쉽지 않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의 열기는 비단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분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비책을 근사한 도상의 언어로 떠들기 이전에 지금 이 공동체가 함께 갈 수 있는지부터 묻고 또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내의 병사 등 설상가상으로 덮친 서울 생활의 고난을 뒤로하고 산속으로 들어와 병든 아들과 함께 사는 ‘자연인’ 편을 본 적이 있다. 서울 생활에서 그이를 가장 부끄럽고 힘들게 한 것은 그 자신의 문맹이었다. 그는 이제 산속에서 자유롭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승윤 씨가 한글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그이가 산비탈에 심어둔 묘목은 이삼십 년 후에나 성목이 되어 아들의 약재가 되어줄 터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자연인이다’는 참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또 어느 새벽 멍하니 ‘자연인’들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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