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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사랑하는 자녀에게 운동을 허하라

입력
2017.09.0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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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넘게 이른 아침에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한 시간 가량 빠른 걸음으로 걷고 간단한 근육운동을 한다. 나로선 이 일상의 루틴(routine)을 포기하는 건 정말 싫다. 어쩌다 밤샘을 하더라도 무거운 몸을 추슬러 어김없이 운동장에 나가는 이유다. 이런 나에게 조찬 모임이 기피대상 1호가 된 건 당연지사라 하겠다.

운동강박증 환자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해묵은 습관을 소중하게 붙들고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뇌가 깨어나고 몸이 가뿐해지는 걸 매일 몸소 체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아침 운동은 종종 나에게 망외의 보상과 희열을 안겨주기도 한다. 연구를 하다 보면 적절한 주제를 발굴하지 못해 시간만 허송하며 애를 태우는 때가 더러 있다. 드러난 현상의 배경을 설명하기 어려워 연구의 진척이 지지부진한 경우는 더 잦은 편이다. 그런데 갓 깨어난 뇌가 깜짝 선물을 건네는 바람에 돌파구를 찾곤 한다.

이 때문에 나는 운동의 가치를 무척 높게 평가한다. 한 번도 그걸 시간낭비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 자녀들도 이런 나의 마음을 헤아려 가급적이면 운동애호가가 되어 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나의 희망은 아직까진 그저 희망으로만 남아 있다. 대신 아내가 나를 만나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 게 결혼을 통해 얻은 큰 소득 중 하나라며 나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주지하듯이 한국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 학생들의 이런 성취는 다른 나라 학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학습시간의 투입을 통해 얻은 것이다. 즉 학습시간당 점수로 환산할 경우 한국 학생들의 성적은 거의 바닥 수준으로 하락한다. 짬만 나면 사교육에 매달리느라 운동은 엄두도 못 내며 얻은 성적이 그렇다.

기실 중ㆍ고등학생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해 보면 운동시간은 일관되게 성적을 낮추는 것으로 나온다. 살벌한 내신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운동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수행한 한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교 2학년 학생 가운데 23%는 땀 흘리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으며 52%는 운동시간이 주 1시간 이하였다. 게다가 교육과정에 책정되어 있는 체육시간마저도 무척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라 학생들의 운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존 레이티 하버드 의대 교수는 개탄해 마지않았다. 선진국들이 체육을 중시하며 다른 교과 시간에도 몸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는 운동기반교육을 강화하고 있는데 한국만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핵심역량은 창의성과 공감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량을 두루 함양하는 데는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 뇌과학자인 KAIST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적당한 운동은 뇌세포 생성을 도와 창의성을 증진시킨다. 아울러 동료들과 땀 흘리며 팀 스포츠에 참여하는 건 공감능력과 협동심과 기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지점에서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친 영국의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의 승리는 바로 이튼 스쿨의 운동장에서 시작됐다”고 갈파한 배경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는 것도 좋겠다.

이제는 학부모가 생각을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단순 지식 습득을 위해 자녀가 매일 몇 시간씩 학원 책상에 앉아 있게 하는 건 장차 인공지능과 경쟁해야 할 자녀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가 되기 어렵다. 자녀가 하루에 단 30분만이라도 땀 흘리는 운동을 꾸준히 하도록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사랑하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훨씬 더 가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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