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선 후보 결정 시점 인터넷 글 특정 후보자 당선·낙선 목적"
국정원의 상명하복 특성 고려 "원 전 원장 궁극적 책임져야"
9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도 유죄’라는 판단을 내린 서울고법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올린 인터넷 글을 분석해 2012년 8월 이후 활동이 인터넷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인정의 범위부터 1심과 큰 차이를 보였다. 국정원 직원 메일의 첨부파일에서 나온 트위터 계정을 “다른 사람이 작성했을 수 있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1심과 달리 “본인만 아는 내용으로 자신의 메일에 필요해서 첨부했을 것”이라며 증거로 인정하는 등 1심의 175개보다 훨씬 많은 716개의 트위터 계정을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봤다.
특히 재판부는 인터넷 글의 내용분석을 통해 ‘2012년 8월 이후에 올린 글들은 선거운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12년 8월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후보로 결정된 시점으로, 재판부는 “1~6월에는 정치글이 84% 이상이지만 8월 이후에는 선거글이 압도적으로 많고 질적으로 변화하는 등 이 시점을 기준으로 특정 후보자를 인식한 선거운동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8월 이후 작성된 심리전단의 찬반클릭 1,214회 중 1,057회, 선거 관련 인터넷 댓글과 게시글 101회, 트윗과 리트윗 13만6,017회가 선거개입 글이라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원심이 트윗ㆍ리트윗 글 11만여건만 증거로 인정한 것과 비교하면 채택된 증거가 훨씬 늘어났고, 새로 인정된 증거들이 선거개입으로 판단됐다.
실제로 당시 심리전단 직원들의 트윗글은 ‘박근혜 지지, 문재인 반대’ 성격이 뚜렷했다. 예컨대 2012년 9월 “문재인 후보가 75년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수감된 전과가 있네요. 국법을 어긴 전과자가 대통령 출마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잘 분별해야겠네요”라는 트윗글을 올린 반면, 10월에는 “확고하고 올바른 안보관을 갖고 있는 박근혜만이 해답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런 근거로 재판부는 “국정원이 사이버공론장에 직접 개입해 일반 국민인양 선거 쟁점에 관한 의견을 조직적으로 전파했다”며 “국정원이 본연의 활동 범위를 벗어나 공직선거법을 위반했고,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한 게 명백하다”고 밝혔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인터넷 공간에서 선거운동을 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1심 법원이 선거법이 규정하는 ‘선거운동’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구분하면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의 이름을 적시하면서 당선을 돕지 않은 이상 선거운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 것과는 딴판의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조직적 특성상 심리전단의 선거운동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일관된 지시에 따른 활동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원 전 원장이 “야권연대 등을 통한 종북 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막아야 한다”는 지시를 지속적으로 내린 것은 심리전단 직원들로 하여금 ‘종북세력=현 정부 반대 세력’이라는 인식을 갖게 했고, 이에 따라 심리전단이 야당을 반대하고 여당을 지지하는 글을 전파한 것이 자연스런 결과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엄격한 상명하복 체계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국정원장 지시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일탈 행위를 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의 구체적인 활동까지는 몰랐거나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이들의 선거개입 행위를 묵인한 ‘미필적 고의’는 인정된다는 얘기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심리전단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일관되게 독려했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1심 법원이 “과거 국정원의 잘못된 업무수행 방식의 관행을 탈피하지 못해 비롯된 것”이라며 감경사유를 밝힌 것과 달리, 원 전 원장이 법정구속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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