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검사에 유예기간 주던 정부, 세월호로 경각심 일자 강력제재
"취지는 좋지만 사전 고지도 없이…" 주민들 일방적 폐쇄 방침에 성토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는 텅텅 비어 있었다. 두 줄의 빨간색 비닐테이프로 출입금지 표시가 돼 있고, ‘놀이시설 설치검사 미실시로 인해 2015년 1월 27일부터 폐쇄한다’는 폐쇄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또 그네가 위쪽 기둥에 감겨 있는 등 이용을 막으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엄마와 함께 인근을 지나던 한 아이가 “놀이터에 들어가면 안 되냐”며 아쉬운 듯 묻자 엄마는 머뭇거리다 “위험하지 않게 고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27일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된 놀이터는 전국적으로 약 1,700곳에 달한다. 이유는 국민안전처의 실태조사 때문이다. 안전처는 30일까지 안전검사에서 불합격하거나 검사를 받지 않아 이용금지 조치가 내려진 어린이놀이터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전국 6만2,181곳의 어린이놀이터 중 출입을 막은 1,696곳(24일 기준)이 제대로 폐쇄조치를 준수하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안전검사 없이 어린이들의 시설물 사용을 방치하는 놀이터 관리자가 적발되면 경찰에 고발된다.
사연은 이렇다. 정부는 어린이 놀이기구와 관련된 안전사고가 늘자 2008년 1월부터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을 시행하면서 2012년까지 유예기간을 주고 놀이터 정비를 지시했다. 하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진척이 더디자 유예기간을 3년 연장했다. 그런데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안전 경각심이 크게 일면서 정부가 유예기간 추가 연장 없이 강경 제재에 나선 것이다. 이 법령을 위반해 안전검사를 받지 않고 놀이터를 이용하게 되면 관리자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취지야 좋다지만 졸지에 놀이터를 잃어버린 주민들은 불만이 한가득이다. 동네 공터가 대부분 개발돼 가뜩이나 뛰어 놀 곳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동네 놀이터는 아이들의 야외 활동을 수용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거주하는 김모(36ㆍ여)씨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놀이터가 없어지는 바람에 다섯 살 된 아들과 놀러 갈 곳이 마땅치 않아졌다”며 “근처에 석촌호수 공원이 있지만, 어린 자녀를 데려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여서 놀이터를 대신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주민에게 충분한 사전 고지 없이 급작스레 놀이터 폐쇄를 밀어붙인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영주(43ㆍ강남구 논현1동)씨는 “지역 특성상 놀이터 외에는 아이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데 그런 고려 없이 갑자기 출입을 막아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강동구 길동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안세진(34)씨는 “일방적인 놀이터 폐쇄는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보인다”며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수시로 점검을 하고 정비를 독려했다면 이 같은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김민정기자 fac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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