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검찰 공화국 유혹 빠져
어느 정권이든 ‘우병우’는 존재
상명하복ㆍ검사동일체 구조 속
대한민국 검사는 총장 1명뿐인 셈”
“우병우만 그랬겠나”
전직 검찰총장들은 그 동안 역대 정권들이 ‘검찰공화국’의 유혹을 쉬이 떨쳐내지 못했다고 증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권마다 인사를 통해 ‘잘 드는 칼’을 쥐고 검찰권을 남용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박근혜정부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인사를 다 했다는데 우병우만의 일이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역대 정권은 검찰을 이용하려고 했다. 청와대가 가만히 안 있었다”면서 “물론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결국 대통령이 검찰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12~13일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총장이 지켜야 할 기본과 검찰이 나아갈 방향 등을 듣기 위해 임기 2년을 무사히 마친 전직 검찰총장 두 명을 만나 장시간 인터뷰했다. 두 사람은 익명 인터뷰를 원해 편의상 A, B 전 총장으로 호칭했고, 과거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A 전 총장은 검사들 개개인도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여당이라고 봐줘도 안 되고, 자기 정치 성향에 부합하는 수사를 하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며 “원칙에 따라 수사하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 정권에서 자주 거론된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에 대해서는 “수사에 관해서 청와대와 통화를 하면 문책하도록 하고 필요할 때에는 법무부와 통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 전 총장은 “(청와대가) 법무부를 한 번 거치면 답답하니 검찰에 직접 물어보려고 전화를 하는데 한번 용인하기 시작하면 나중엔 그 정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초읽기에 들어간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세월이 달라진 만큼 수사관행을 개선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반성적 고려가 필요하다”며 몸을 낮췄다. B 전 총장은 “모든 국가기관은 국민과 동떨어져선 안 된다”면서 “검찰도 변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어 “법원과 검찰은 국민을 직접 대하기 때문에 국민 눈높이에 맞는 재판과 수사를 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인권의식이 높아진 만큼 수사관행도 그에 맞게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총장들이 일선 검찰청에서 수사를 하던 때에는 철야수사가 당연시됐다. 피의자를 소환조사 한 뒤 당일 밤늦게 돌려보내면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밤샘수사 끝에 자백을 받아내면 ‘철야수사 끝에 전격 구속’이라는 고무적인 헤드라인이 달렸다고 회상했다. B 전 총장은 “보통 저녁을 먹고 피의자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새벽 1시나 돼야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철야 수사를 해서 세수도 못 하고 이튿날 출근한 부장검사나 검사장에게 보고를 가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피의자 인권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아졌고 수사관행도 바뀌는 과정에 있다”면서 “이제는 당사자가 포토라인에 다시 서느니 오늘 끝내겠다고 동의하더라도 밤샘수사를 하면 검찰이 비판을 받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검사는 검찰총장 한 명뿐”
임명직인 검찰총장 한 사람에게 쏠린 힘은 막대하다. 실제로 B 전 총장은 ‘검찰총장의 위상과 무게감’에 대해 “대한민국에 검사는 검찰총장 한 명뿐”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했다. ‘전국 2,000여 검사의 꿈’인 검찰총장직을 직접 지내 본 이들이 “총장이 가지는 권력은 막강하다”고 시인한 것이다. 검찰은 올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재계를 호령하는 기업 총수들을 구속해 죄를 묻는 것은 오히려 흔한 일이다. 검사는 이처럼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며 수사와 관련해 경찰을 지휘ㆍ감독한다. 또 국가가 당사자인 소송 등을 수행하기도 한다. 정ㆍ재계를 불문하고 수사하는 검찰 조직 최정점에는 검찰총장이 있다.
B 전 총장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검사’로까지 지칭되는 검찰총장의 권한이 검찰청법에 근거한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상명하복 원칙에 따라 검찰조직 수장인 검찰총장이 수사와 관련한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상급자의 지휘ㆍ감독에 따르도록 한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평검사는 소속 검사장의, 검사장은 결국 총장의 감독을 받다 보면 대한민국에 검사는 결국 검찰총장 한 명인 셈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힘센 검찰총장’은 집권세력의 통치 작용이 오로지 법률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 ‘비정상’을 보여준다. B 전 총장은 “막강한 검찰력은 법치주의 후진국을 방증한다”고 자조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면서 “9시 뉴스에 검찰 기사가 가장 먼저 등장하면 후진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관련 뉴스가 헤드라인으로 다뤄지면 나라에 그늘지고 어두운 면이 많다는 것”이라면서 “정치인들이 뇌물을 주고 받은 것이 국민들 삶과 무슨 관계가 있나. 국민 생활에 필요한 뉴스는 검찰 소식 말고도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힘센 검찰력’은 수사의 정치화 탓
대한민국 검찰이 다른 조직에 비해 부각되는 이유를 ‘수사의 정치화’에서 찾는 전직 총장도 있다. A 전 총장은 “검찰력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비슷한데 우리나라 검찰은 정치적인 사건이나 대기업 수사를 많이 해 수사가 정치화하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찰권이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검찰청법에 걸 맞게 운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전직 총장들은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인사권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B 전 총장은 “검찰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인사다. 인사를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사람이 자꾸 사(私)가 끼어선 안 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검찰 인사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검사장 승진 인사를 할 때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이 ‘이 사람은 미우니까 (승진자 명단에서) 빼야 되겠다’고 하거나 ‘이 사람은 실력은 없지만 우리가 해달라는 수사를 잘 했으니까 승진시키자’고 해서는 안 된다”면서 “검찰인사가 시스템에 의해 운용돼 인사권자가 인사에 재량을 많이 행사하지 못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검찰인사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는 현행 인사시스템은 형식적이므로 실질적 권한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직 총장들은 검찰이 검찰권을 절제해 행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A 전 총장은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면 그 기여도에 따라 책임을 세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이 수사를 할 때 드라이브를 세게 건다”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도 그 만큼 세게 물어야 무리한 수사를 못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정치화된 재판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법원 문제는 또 법원이 해결하도록 맡겨두고 검찰은 무리한 기소에 대해서는 책임을 세게 물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A 전 총장은 권력기관일수록 감찰을 강하게 해야 한다며 자정노력도 당부했다. 그는 “자체 감찰을 형식적으로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면서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 ‘제 식구 감싸기’ 비판이 일지 않도록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A 전 총장은 검찰권이 더욱 부각된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그 성향에 따라 수사를 해석해서 다른 진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서 “수사결론이 날 때 기사를 써야 하는데 수사 과정에서 언론이 이미 다 수사를 해버린다"고 비판했다. 피의자가 수사를 받더라도 아직 재판을 통해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지만 언론이 수사단계에서부터 단죄하는 오류를 범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언론이 수사 방향을 미리 정해놓은 뒤 검찰 수사가 언론이 제시한 선에 도달하지 못하면 ‘축소ㆍ은폐 수사’라고 비판하고 국민들은 그대로 믿는다”고 언론의 객관성을 당부했다.
”권력 지향적 검사들, 자리 탐해선 안 돼”
전직 검찰총장들은 검사들이 ‘자리’를 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했다. B 전 총장은 “어느 조직에 들어가든 그 조직의 장이 되고 싶은 열망은 공통적인 것 아니겠냐”면서도 “검찰이 힘이 세니까 그 총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총장은 한 명인데 누구나 다 총장 하겠다고 하면 되겠느냐"면서 “검사장을 꿈 꿀 수는 있어도 그 뒤로는 관운”이라고 말했다. 이는 검사들의 소망과는 동떨어진 듯 하다.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의 미공개 회고록에서 "병아리 초임 검사 시절부터 장차 검찰총장이 될 검사라는 자부심을 갖고 검찰총수가 되려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근무해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행동했다"고 적었다. 드러내 말하지 않을 뿐 적지 않은 검사들이 임관과 함께 ‘검찰총장’을 꿈꾼다.
출발을 앞둔 ‘문무일 호’에게는 “검찰조직이 안정된 뒤에 수사를 천천히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밖으로 칼을 휘두르기 전에 검찰개혁과 수사권 조정 문제로 뒤숭숭한 검찰 내부조직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A 전 총장은 “문 후보자나 봉욱 대검 차장, 윤석열 지검장 등은 과거 대검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는 물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문제를 포함한 여러 검찰개혁 이슈를 다룬 경험이 있다”면서 직면 과제를 잘 해결해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함께 외부 압력을 배척하고 원칙과 법에 따른 수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문 후보자와 함께 일해 본 두 사람은 “문 후보자가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어려운 시기에 검찰을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며 “이름처럼 문무(文武)를 겸비하는 총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文)은 형사소송법 등 이론적 깊이를, 무(武)는 수사력과 검찰 지휘력을 의미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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