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맥 지원을” vs “기록사업 힘써야”
“현대에 맞게 변화 필요” 지적도
문화유산에 우열을 가르기는 힘들지만 인간문화재도 종목에 따라 ‘전승자 부익부 빈익빈’을 피할 수 없다. 판소리나 종묘제례악, 승무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중 이수자가 수백 명에 달하는 전승활성화 종목이다. 공연이 많고 대학에 전공과정이 개설되는 등 기틀이 잘 닦여 있어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 전통악기와 의상 구입비, 레슨비 같은 투자 비용이 상당하지만 자비를 들여 전승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가야금이나 대금 등 전통악기의 산조(독주)나, 경기민요, 태평무 등 무용ㆍ기악ㆍ판소리도 전승활성화 종목이다.
반면 문화유산 전승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시대변화와 함께 소멸 위기에 놓인 문화재도 있다. 대표적인 종목이 베틀의 한 부분인 ‘바디’를 만드는 바디장이다. 2006년 무형문화재 제88호 구진갑 선생 별세 이후 유일한 이수자 김모씨가 생업을 위해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현재는 전승자가 없는 실정이다.
특정 문화유산이 사라지면 다른 종목도 영향을 받는다. 바디장이 맥이 끊길 위기에 놓이면서 한산 모시짜기도 덩달아 어려워졌다. 한산 모시짜기, 삼베를 짜는 곡성의 돌실나이, 집에서 착용하는 감투를 만드는 탕건장 등 35건은 지난해 문화재청이 취약종목으로 지정할 만큼 전승자가 적다. 한산 모시짜기 보유자 방연옥(73) 선생은 “돌아가신 구진갑 선생이 만드신 바디로 짰었는데, 지금은 전통 바디를 구하기 어렵다”며 “친정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전통 대나무바디는 시연을 할 때만 아껴서 쓰고 평소엔 신형베틀을 쓴다”고 말했다. 삼베옷이나 모시, 감투에 대한 수요가 확연히 줄면서 새롭게 배우려는 사람도 찾기 어려워졌다. 섬유공업이 발달하면서 짧은 시간에 얇고 시원한 옷감을 생산할 수 있게 되자,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전통옷감은 도태되고 있다.
관객의 눈길을 끄는 전통공연 종목도 예외는 아니다.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은 있지만 열악한 환경을 딛고 ‘줄타기 꿈나무’가 되려는 새 전승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산하(14) 최서우(14) 최준우(10)군 등 전수교육생 3명은 지난달 25일 영하 13도의 강추위에, 체감온도는 5도쯤 더 낮은 과천의 뒷산 야외 교육장에서 전수교육을 받았다. 최군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줄이 얼어서 팽팽해지고 물을 묻힌 양말이 너무 차갑다”면서 “전수관이 있으면 겨울에도 안전할 텐데 지금은 비가 오면 줄타기 교육 대신 장구 등을 배운다”고 말했다.
문화재 전승자들은 민족의 자산인 인간문화재를 보존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문배주 보유자 이기춘(76) 선생은 “전승자들이 자기가 만든 술, 전통공예품에 긍지를 갖고 있어도 정부 뒷받침이 없으면 개인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했다. 방연옥 선생도 “40대 제자가 있어 명맥이 끊길 정도는 아니다”면서도 “배우는 사람은 있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적고 도시화된 환경에서는 모시짜기가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사람들이 배워서 후세에 전해야 하는데 아파트에선 베틀 소리가 시끄러워 밤낮없는 작업을 할 수 없다.
전통 줄타기를 지키기 위해 풍물패 실연자에서 줄타기 보존회 실무책임자가 된 유연곤 줄타기 보존회 사무국장은 “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이자 앞으로 후세에 물려줄 중요한 자산”이라며 “전통문화가 지속적으로 전승될 수 있도록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더 많은 교육시간을 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현대와 동떨어진 종목은 언젠가 소멸될 수밖에 없으니 가까스로 종목을 연명하기보다 미래 복원을 위한 기록사업에 힘쓰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2000~2003년 무형문화재 기록화사업에 참여한 장경희(58)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기술은 맥이 끊기더라도 미래에 언제든 복원시킬 수 있도록 기록화사업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공정과정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입체영상을 통한 애니메이션작업과 반복ㆍ확대 기능을 추가하면, 장인을 찾아가기 어려운 공예자들이 영상을 통해 기술을 익힐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전통을 지키되 현대에 맞게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현대인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고 계승도 어렵다는 것이다. 안명선(57)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은 “현대사회는 효율을 중시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고귀한 문화를 단지 ‘몰라서’ 잊혀지게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전통 문화와 현대 예술을 조화시켜 현 세대에 알리고, 반대로 장인들에게도 전통을 잇기 위한 개량의 필요성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도 “아무도 쓰지 않는 전통공예품을 몇 달간 만들어 수백 만원에 파는 건 보유자에게도, 이를 지원하는 국가에도 힘든 일”이라며 “현대에 맞게 개량을 해 더 많은 사람이 문화재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승자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더라도 결국 가족들이 이어받는 현재의 구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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