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하 기자

등록 : 2017.07.11 04:40
수정 : 2017.07.11 04:40

[컬처피디아] 라캉과 베토벤이 만나다… '인문학+클래식' 바람

"클래식 장벽 낮추자" 인문학 결합한 연주회 잇달아

등록 : 2017.07.11 04:40
수정 : 2017.07.11 04:40

현악4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맨 왼쪽)씨는 "작곡가의 일생을 파악해야만 음악이 제대로 들린다. 곡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음악도 결국은 하나의 인문학”

작곡가·작곡과정 위주로 얘기

전문가 해설 위주 콘서트와 달리

연주 중간에 끊고 강의후 또 연주

클래식 장벽 낮추는데 큰 도움

“인간이 욕망하는 것은 타자의 욕망이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이 스스로 의식한 자아는 만들어진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0세기 후반 철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이 거물이 19일 다시 소환된다. 장소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라캉 vs 베토벤’이라는 생소한 제목의 연주회를 통해서다. ‘라캉 vs 베토벤’은 서울 코뮤니타스 앙상블의 창단 연주회다. 19세기 독일 음악가와 현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사이에서 어떤 연관성을 찾아냈기에 연주회의 제목에 두 사람 이름을 내건 것일까. 이 앙상블의 음악감독을 맡은 유주환 작곡가는 “문화 전 방위에 영향을 끼친 라캉은 유난히 음악에 대한 연결고리가 없었다. 하지만 라캉의 명제는 작곡가들이 하고 있는 고민을 말해 준다”고 말했다.

인문학과 클래식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잇달아 무대를 찾는다. 실제 연주를 감상하며 음악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강의형 연주회. 자리에 앉아 일방적으로 설명을 듣기만 하지는 않아 ‘토크 콘서트’ ‘렉처 콘서트’와 같은 이름이 붙는다. 인문학과 음악의 결합이 관객과의 소통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만들어진 행사들이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음악도 결국은 예술로서 하나의 인문학이라는 게 인문학 연주회를 이끄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연주회에서 초점이 되는 것도 사람, 작곡가다. 유주환 작곡가는 라캉의 말을 빌려 “시간이 흘러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인정받는 작곡가는 타인의 욕망에 따라 다른 사람이 듣기 편한 곡을 만든 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겐 어렵더라도 자신의 욕망에 따른 곡을 만든 이들”이라고 말했다. 베토벤은 그런 점에서 자신의 욕망에 귀 기울인 작곡가였다. 베토벤의 작곡 과정을 알아보면서 나아가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이 앙상블의 목표다. 작곡가가 부유했는지 가난했는지, 혹은 작품이 몇 년도에 작곡됐는지 등 단편적인 사실로는 곡 자체를 깊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유 작곡가는 강조했다.

라캉의 입을 빌려 베토벤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는 '서울코뮤니타스앙상블'의 공연 포스터. 서울코뮤니타스앙상블 제공

‘토크 콘서트’라는 정체성도 어디까지나 음악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창작 과정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작곡가들이 어떤 상상의 과정을 거치는지 곡의 주요 부분을 끊어 맥락을 설명하고 나서 완곡을 다시 한 번 연주하는 방식으로 연주회는 진행된다. 유 작곡가는 “작곡가들이 곡을 만들 때 어떤 자의식을 갖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기획된 연주회”라며 “다음 봄에는 인문학자, 철학자와 함께하고 규모가 더 커지면 사회학자와 함께하는 연주회를 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인문학 연주회는 평론가 등 음악 전문가의 해설 위주로 이뤄지는 그동안의 강연과 다르다. 예술의전당과 롯데콘서트홀 등 클래식 공연장에서 실제 연주가 이뤄진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현악4중주단 콰르텟엑스도 인문학 연주회 대열에 합류했다. 콰르텟엑스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씨는 “작곡가의 일생을 파악해야만 음악이 제대로 들린다. 곡을 단편적으로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조씨는 ‘렉처 콘서트’라는 이름도 직접 붙였다. 작곡가에 대한 설명이 연주회 전체 비중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설명의 비중이 높다. 평일 오전 롯데콘서트홀에서 마티네 콘서트 일환으로 4회에 걸쳐 영화음악 거장들의 음악을 선보이는 콘서트를 연다. 지난달 14일 일본 영화음악의 대가 히사이시 조를 시작으로 내달 1일 월트 디즈니가 예정돼 있다.

현악4중주단 콰르텟엑스가 지난달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일본 영화음악 거장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연주하며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콘서트를 하고 있다.

조윤범씨는 “강의와 연주가 합쳐진 이 렉처 콘서트 자체가 스토리가 있는 강의 프로그램”이라며 “그 작곡가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작업에 참여했는지 쭉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클래식 작곡가들에 대한 렉처 콘서트도 다수 이끌어 왔는데 유명한 곡 위주 연주 대신 시대를 따라 연주하는 방법을 고수한다. 조씨는 “이 사람이 누구와 작업을 하면서 이런 곡이 탄생했는지 살펴보면 작곡 스타일의 변화까지 느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관객은 이런 연주를 통해 ‘동시대성’을 얻는다. 190년 전 사망한 베토벤이 당시 곡을 발표할 때 청중들이 느꼈던 감정에 조금이나마 가깝게 다가가 음악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렉처 콘서트의 취지다.

음악과 인문학의 결합은 서로 다른 분야의 주제로도 확대된다.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은 18일 ‘음악과 건축의 동행’을 주제로 ‘퇴근길 토크콘서트’를 연다. 1917년 영국 건축가 아더 딕슨이 설계한 유형문화재 제35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건축가 황두진과 피아니스트인 조은아 경희대 교수가 해설자로 나선다. 서울시향이 모차르트의 레퀴엠,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연주하고 두 해설자가 음악과 건축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18일 '음악과 건축의 동행'을 주제로 '퇴근길 토크콘서트'를 여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건축가 황두진과 피아니스트 조은아 경희대 교수가 해설자로 나선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인문학과 음악이 결합한 공연들의 목적은 결국 하나다. 클래식 음악의 장벽을 낮추고 관객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조윤범씨는 “어느 작곡가가 오로지 일부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었겠나. 결국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음악인데 클래식에서는 나와 다른 음악이라고 여기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며 “이런 공연을 통해 음악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전국지자체평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