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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0)미주순회공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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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80)미주순회공연(中)

입력
2002.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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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을 때의 일이다. 조용필(趙容弼) 하춘화(河春花) 혜은이 등 우리 일행 모두 낯선 풍경에 가슴이 설렜다.미국 구경이 처음이었던 나와 내 매니저 최봉호(崔奉鎬) 회장은 어린애마냥 즐거워했다. 최 회장이 갑자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손로원(孫露源) 작사, 박시춘(朴是春) 작곡의 ‘샌프란시스코’였다.

‘비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곤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파는 아메리칸 아가씨’.

이국 땅에서 부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노래였다. 게다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이 노래에 나오는 샌프란시스코가 아닌가.

그런데 노래를 끝낸 최 회장의 말 한마디에 우리 모두는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주일아, 여기가 샌프란시스코인 것은 알겠는데 아메리카는 아직 멀었냐?” 최 회장이 농담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진짜 모르고 그랬는지는 독자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다.

어쨌든 미주순회공연에서는 이처럼 재미난 일이 많았다.

30~40일 안에 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시카고 뉴욕 워싱턴 휴스턴 덴버 토론토 에드먼턴 등을 돌아다녀야 하는 강행군이었지만 공연단은 모두 낯선 이국 여행을 즐겼다.

더욱이 가는 곳마다 동포들의 뜨거운 갈채까지 받았으니 당시 연예인들에게 이 미주순회공연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영어소통이 안 돼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다. 나와 최 회장, 그리고 몇몇 연예인들을 포함해 무려 15명이 햄버거 가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다 내가 주문을 하게 됐다. 내 딴에는 ‘피프틴(fifteen)’이라고 또박또박 말하면 미국인 점원이 오히려 못 알아 들을 것 같아 혀를 굴렸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혀를 너무 굴렸던 것이다. “피프리, 플리즈.” 어쨌든 그날 우리는 쉬지 않고 나오는 햄버거 50개를 모두 먹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호텔 방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뜨거운 물만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도 찬물이 나오질 않았다. 할 수 없이 거실에 있던 최 회장에게 “전화로 사람 좀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영어에 자신이 없기는 최 회장도 마찬가지.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수화기를 들었고 딱 두 마디만 했다.

“갱(gang)! 으악!” 1분도 안 돼 호텔 직원 10여 명과 경찰까지 방으로 몰려왔다. 무슨 일이든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되는 법이다.

그러나 미주순회공연에서 가장 재미를 본 사람은 가수 이 용(李 龍)일 것이다.

83년 공연 때의 일이다. 그는 가수 데뷔 2주년의 날을 미국 덴버에서 맞아 아주 신이 나 있었다.

더욱이 ‘바람이려오’ ‘잊혀진 계절’ 등 자신의 노래가 열광적인 반응을 얻자 공연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부터인가 버스에 늦게 타기 시작했다. 또 일행과 떨어져 호텔 방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화가 난 조용필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게 어디서 개인 플레이야?” 가볍게 얻어맞기까지 했다.

결국 이 용이 고백을 했다. “실은 애인이 생겼어요. 미국 와서 첫 공연 때 만난 여성인데 계속 전화로 사귀고 있습니다. 조금 봐주세요.”

이 용은 한달 내내 그 여성과 전화로 사랑을 키웠고 결국 귀국 후 얼마 안 있다 결혼식까지 올렸다.

지금 그들은 경기 일산에 사는데 가끔씩 병문안을 와 당시 이야기를 즐겁게 들려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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