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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ㆍ이웃 다툼… 김장철은 긴장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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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갈등ㆍ이웃 다툼… 김장철은 긴장철

입력
2017.12.18 2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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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라도 모여” 자녀 부르는 부모

“이제 사먹어요” 난색 표하는 자녀

김장 포기족 늘며 가족 갈등 불씨

“절인 배추로 왜 계단 가로막냐”

이웃사촌 시비 경찰 출동까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장모님, 이러다 쓰러지겠어요.” “자네만 힘든가, 말이 너무 많아!”

인천에 사는 직장인 이모(55)씨는 최근 가족 19명이 모여 김장을 하던 자리에서 장모와 말다툼했다. 3주간 휴일도 없이 격무에 시달리다 겨우 쉬게 된 주말, 하필 처가인 충남 부여군까지 불려가 400포기 김장 강행군에 동원되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올해만 빠지면 안되겠냐”는 이씨 얘기에 “다 같이 먹을 김치”라며 참석을 강요한 장모를 보고 있자니 김치 만드는 내내 원망이 쌓였단다. 이씨는 “(김장)재료 값, 시간, 노동력까지 들였는데 다툼까지 생겨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다”라며 “’김장 때라도 모여 가족 간 우애를 다지자’는 장모의 소신에 대한 반감만 매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김장철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가족 간, 심지어 이웃 간 김장 갈등이 늘고 있다. 온 가족 빠짐없이 모여야 진짜 김장이라는 부모와, 휴일 ‘원정 김장’까진 벅차다며 난색을 표하는 자녀들의 이해관계가 정면충돌하는 갈등이 대표적. 집집마다 김장을 했던 과거와 달리, 김장하는 집이 갈수록 줄다 보니 김장을 고수하는 부모 강요에 “왜 돈 들이고 시간 들여 고생하느냐”라며 억지 참여를 거부하는 ‘김포족(김장포기족)’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한 김치제조업체가 주부 1,175명을 설문한 결과, ‘김장을 포기했다’는 응답자 비율은 55%로, 지난해(47%)보다 8%포인트 늘었다. 시간 부족과 고된 노동 등을 감안하면 “사 먹는 게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올해 김장을 도운 김준현(27)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김장을 하는 건 우리집밖에 없었다”며 “이번에 수능을 마친 동생 반발도 커 내년부턴 사먹기로 했다”고 했다.

김장 갈등은 심지어 집 담장을 넘어가 폭력 사건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달 20일 쌍방폭행 혐의로 주부 A(60)씨와 B(5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자신이 사는 다세대주택 계단에 김장 배추 수십 포기를 쌓아놓은 이웃 B(58)씨에게 “왜 (배추로) 통로를 가로막냐”고 따지다가 가슴을 두 차례 밀쳤고, 화가 난 B씨는 배춧잎으로 A씨 얼굴을 때렸다. 경찰조차 “김장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했을 정도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7)씨는 이웃식당 주인과 수년 째 ‘김장 품앗이’을 해왔지만 최근 사이가 멀어졌다고 털어놓았다. “200포기 남짓의 우리 가게 김장을 도와놓곤 저쪽은 배추 500포기를 쌓아놓고 기다렸다”는 게 이웃사촌에게 실망한 이유다.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문화융합연구단장은 “핵가족화와 식습관의 서양화로 김치 소비가 줄면서 직접 김장하는 가정도 줄어드는 추세”라면서 “노년층은 김장노동을 비용으로 여기는 청년층 생각을, 청년층은 김장을 공동체문화로 바라보는 노년층 생각을 존중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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