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트위터 흉내낸 계정까지 등장
브렉시트와 축구몰락의 상관관계 쓴 책도 화제
잉글랜드 축구 팬들이 큰 충격에 빠졌다. 잉글랜드의 조기 탈락과 얼마 전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EU 탈퇴)를 연결 지어 대표팀을 조롱하고 있다. 잉글랜드가 28일(한국시간) 유로 2016 16강에서 유럽 축구의 약소국 아이슬란드에 1-2로 패하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흉내낸 트위터 계정에는 “또다시 유럽에서 떨어져 나갔네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어 “호지슨 감독에게 브렉시트 협상에서 감독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우리를 유럽에서 분리해 주는 것을 이미 경험해 본 것 같으니…”라며 잉글랜드의 16강 탈락을 비꼬기도 했다. 이 트위터 계정은 여왕의 것을 흉내 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 엘리자베스 여왕의 트위터는 따로 없고 대신 영국 왕실 이름의 공식 계정이 있다.
영국 언론들도 합세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결과는 그야말로 더 이상 적절할 수 없는 타이밍이었다”며 “잉글랜드는 인구 33만 명에 불과한 국가(아이슬란드)에 패배해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나온 지) 불과 나흘 만에 제2의 유럽 탈퇴를 겪게 됐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잉글랜드 축구의 몰락과 브렉시트의 상관 관계를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분석한 책이 있다. 유럽 축구 컬럼니스트 사이먼 쿠퍼가 2006년에 쓴 ‘사커노믹스’다.
이 책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은 잉글랜드 축구가 부진한 이유로 프리미어리그에 너무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뛴다는 점을 꼽는다. 이 때문에 자국 선수들의 육성 기회가 가로막힌다는 논리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해 자국 노동자들이 일할 기회를 놓쳤다는 브렉시트 찬성론자의 주장과 비슷하다. 실제 잉글랜드는 최근 자국 선수 보호를 위해 외국인 선수의 워크퍼밋(노동취업허가서) 발급을 강화했다. 브렉시트의 가결로 앞으로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 선수들의 프리미어리그 입성은 더욱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사이먼 쿠퍼는 ‘우리 리그에도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가 언제 성장해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는 반대로 외부의 유입을 막는 억제 정책이 오히려 잉글랜드 대표팀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꼬집는다. 유로 2016에 출전한 잉글랜드 대표팀 23명 중에는 다른 유럽 국가의 이민자 출신이 한 명도 없다.
쿠퍼는 또한 축구는 한 나라의 인구와 부(富), 대표팀의 국제 경기 경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잉글랜드는 국민소득이 남부럽지 않고 국제 경기 경험도 풍부하지만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를 뺀 인구 수(약 5,000만 명)만 따지면 경쟁국인 독일(약 8,000만 명)이나 프랑스(약 6,600만 명)에 뒤진다.
이런 여러 조건들을 종합해보면 잉글랜드 축구는 크게 부진한 게 아니다. 평균적으로 제 몫은 한다. 다만 ‘잉글랜드가 축구 종주국이니 여전히 세계 최고여야 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언론과 팬들이 대표팀 성적에 필요 이상으로 더 큰 실망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쿠퍼는 잉글랜드 축구가 세계 정상에 서려면 이주민을 꾸준히 받아들이고 세계 축구의 흐름에 유연하게 발맞춰야 한다고 결론 짓는다. 브렉시트와 잉글랜드의 유로 탈락이 맞물린 시점에서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