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ㆍ다니카와 슌타로
6개월간 시에 시로 답한 對詩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출간
“남쪽 바다에서 들려오는 비통한 소식
몇 백 명 아이들이 깊은 물 속
배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는
온 나라가 눈물과 분노로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나는
고작 떨어져 깔린 꽃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비통한 심정을 추스르며 신경림(80) 시인이 써 내려간 시에는 수신인이 있었다. 시를 받아본 이는 일본의 원로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84). 다니카와씨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애도의 심정을 시에 담아 신씨에게 보냈다.
“숨쉴 식(息)자는 스스로 자(自)와 마음 심(心)자 / 일본어 ‘이키(息?숨)’는 이키루(生きる?살다)와 같은 음 / 소리 내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 상상력으로조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괴로움 / 시 쓸 여지도 없다”
한일 원로 시인이 시로 나눈 대화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예담)가 출간됐다. 시에 시로 답하는 대시(對詩)는 일본의 전통적 시 창작 기법에서 연유한 것으로, 국내에선 낯설지만 일본에선 비교적 흔한 형식이다.
두 시인의 첫 만남은 2012년 일본 쿠온출판사가 신경림 시인의 시집 ‘낙타’를 번역 출간하면서 연 기념회에 다니카와씨를 초청하며 이뤄졌다. 전후의 혼돈을 온 몸으로 통과하며 시의 역할을 고민해온 두 사람은 서로의 시에서 닮은 점을 발견하며 가까워졌고 이는 6개월 간의 대시로 이어졌다.
2014년 1월부터 6월까지 번역자 요시카와 나기씨를 사이에 두고 이메일로 주고 받은 스물네 편의 시에서는 다른 듯 닮은 두 시인의 특징이 드러난다. 신경림 시인이 민중의 삶에 천착하는 시를 쓰고 70년대 문단의 민주화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면, 다니카와 시인은 사회나 정치에 대한 직접적 발언보다는 피폐한 세상에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어를 제공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전후 시체와 거지가 넘쳐나는 길거리에서 문학의 할 일을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뿌리는 같다.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와 의연한 대자연을 대비시키는 다니카와씨의 시에 신경림씨는 반 토막이 난 조국의 아픔을 노래하는 시로 화답한다.
“뉴스에서는 / 나라들이 피를 흘리고 있지만 / 일기예보에서는 / 변덕꾸러기 구름이 / 수줍어하는 지구에다 베일을 씌우네.” (다니카와)
“휴전선의 밤바람은 봄이 와도 찬데 / 막 피기 시작한 들꽃들이 / 서로 장난질을 치며 /양쪽에서 다투어 / 철조망을 기어 올라가고 있다” (신경림)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 시선을 맞부딪지 않는 노부부의 대화처럼 고적하게 흘러가던 시담은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극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극도의 애통함을 분출하는 신씨의 시에 다니카와씨는 그 아픔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는 겸허한 말로 애도를 대신했다. 같은 해 5월에는 홍윤숙 시인의 ‘바다를 위한 메모’를 인용한 시로 조심스럽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 ‘…어떤 이 세상 말도 / 바다는 잠잠히 지워버린다’ / 그러나 말의 씨앗은 포레의 레퀴엠 속에 숨어 있다 / 그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 따스한 오월의 햇살을 받으며 싹트는 날을 기다린다”
신경림 시인은 전화통화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너무나 답답하고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시를 썼다”며 “(다니카와씨와는) 국적도, 언어도, 생각도 다르지만 언어의 정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책에는 대시 외에도 두 사람이 서로의 작품 중 꼽은 최고의 시와 2012, 2013년 두 차례 가진 만남이 기록돼 있다. 2013년 파주출판도시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시가 퇴조하는 시대에 한탄하면서도 그 핵심인 시정(詩情?시적 정취)은 영원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일본어의 시라는 말에는 포엠(시 작품), 포에지(시정) 두 가지 뜻이 있어요. 포엠은 쇠퇴해가지만 현대 사람들은 더욱 더 포에지를 갈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다니카와) “시가 전 세계적으로 퇴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는 아날로그 최후의 보루라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 것도 그 속에 포에지가 있기 때문이지요.”(신경림)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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