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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87’ 김윤석 “유족들에 누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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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87’ 김윤석 “유족들에 누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입력
2018.01.16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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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경제 양지원] 배우 김윤석에게 ‘1987’은 단순히 출연작 중 한 작품이 아니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김윤석에게 ‘1987’은 무거운 숙제였다. 실존인물이자 극 중 대공수사처 박처장으로 분한 김윤석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악역을 맡아 홀로 관객들의 공분을 자아내는 몫을 해야 했다. 김윤석의 긴 고민 끝에 만들어진 박 처장은 영화의 몰입도를 더하기에 충분한 캐릭터로 탄생됐다. 고집과 권위가 읽히는 뚜렷한 입매를 만들어내기 위해 촬영 내내 마우스피스를 끼고 연기에 임한 김윤석의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987’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당시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는 많았지만 영화로 만드는 건 첫 번째 시도인 것 같다. 워낙 ‘화이’ 때부터 장준환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데 ‘1987’에서도 시나리오가 참 영리했다. 실존 인물들이 상당 수 들어가 있었고 감정들도 살아 있었다. 그 사이 시나리오가 하정우에게도 넘어갔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니까 ‘형이 하시면 저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평안도 사투리를 비롯해 박 처장 역을 위해 남다른 공을 들인 것으로 아는데.

“마우스피스를 끼고 연기했고, 이마도 M자형으로 만들었다. 고집스러운 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마우스피스를 끼고 연기한 만큼 발음에 신경을 많이 썼다. 평안도 사투리 자체가 서울말에 가깝다. 실제로 평안도 출신 사람을 만나서 연습하고 수업을 들었다. 말투는 오로지 연습밖에 없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어?’라는 대사는 예고편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실제로도 헛웃음이 나는 대사였다.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원래 대사는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습니다’였다. 그런데 너무 웃긴 넌센스라 매끄럽게 연결이 안 됐다. ‘어?’하는 추임새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다."

-‘타짜’ 아귀, ‘황해’ 면정학에 이어 악역의 정점을 찍었다.

“아귀는 개인 자체가 주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악역이다. 이번 박처장 역은 개인적인 개성보다 당시 권력의 어두운 힘을 표현해야 했다. 이를테면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당근과 채찍을 쓰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어차피 애를 써도 결국 무너질 건 무너지는데 그 과정의 디테일을 표현하려 했다.”

-고 박종철 열사와 고등학교 후배라 더 의미 있는 작품일 것 같다.

“아무래도 ‘잘 만들어야겠다’는 부담감이 컸다. 유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잘 만들지 못하면 면목이 없지 않나. 201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 30주기에 부산으로 가서 가족을 찾아 뵀다. 박종철 열사의 누님과 아버님을 만나 ‘1987’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다. ‘제가 시대의 가장 강력한 악역으로 나온다’고 설명해 드렸다.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실제로 겪은 1987년은 어땠나.

“당시 나는 연극에 미쳐있을 때였다. 민주항쟁운동으로 전부 휴교였다. 하루도 최루탄 냄새를 안 맡은 적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불심검문이 하루에도 12번 씩 당할 수 있던 때다. 가방 검사도 마찬가지고. 젊은 청년이 두 명 이상 같이 다니면 무조건 불심검문을 받았다. 참 암울했던 시대였다. 그 와중에도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여진구와 강동원이 각각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여진구는 ‘화이’ 때 만나고 다시 본 건데 정말 잘 자랐더라. 다비드상처럼 잘생기고 멋있는 청년이 됐다. 사실 여진구가 맡은 역할이 분량은 적어도 부담은 큰 캐릭터 아닌가. 그걸 선뜻 하겠다고 할 때 너무 고맙고 든든했다. 강동원은 영화에서 만나는 장면이 없지만 촬영 할 때 한 번 간 적이 있다. 종로에서 연희(김태리)와 도망치는 장면인데 그 날이 여름날씨 중 가장 더울 때였다. 도망 치는 장면에서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열심히 촬영하더라.”

-1987년 이야기지만 현 사회와 연결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당시 6월 항쟁 때 대학생이었던 사람들이 누군가의 부모가 돼서 자녀들과 같이 촛불집회에 나갔다. 그렇게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시대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니까. 1987년에도 많은 사람들이 뭉쳐 결국 해내지 않았나 싶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원 기자 jwon04@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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