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흑인교회 총기난사 사건 용의자의 증오범죄 혐의를 입증할 ‘선언문’ 성격의 웹문서가 발견됐다. 희생자 유족들은 범인을 “용서한다”고 말해 미국사회를 다시 한 번 울렸다.
20일 NBC뉴스 등 미국 언론들은 지난 17일 발생한 이 사건의 용의자 딜런 루프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지막 로디지아인’이라는 제목의 웹문서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의 2,400여 단어 분량인 이 웹문서는 루프의 이름으로 등록된 인터넷주소를 통해 열람이 가능했다. 제목에 사용된 ‘로디지아’역시 현재의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일부 지역에서 소수 백인들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할 때 사용했던 명칭으로, 흑인 차별과 관련된 단어로 꼽힌다.
‘트레이번 마틴 사건이 나를 일깨웠다’거나 ‘지머먼이 옳았다’는 등의 구절도 이 웹문서에 있었다. 플로리다 주에서 자경단원으로 일하던 조지 지머먼은 2012년 2월 플로리다 샌퍼드에서 당시 17세였던 비무장 흑인 청년 트레이번 마틴과 다투던 중 마틴에게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인물이다.
미국 언론들은 현재 경찰이 이 웹문서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조사하고 있고 아직은 이 문서가 용의자에 의해 작성됐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만약 실제로 용의자가 작성한 문서라면 증오범죄 혐의의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인터넷에선 루프가 성조기를 불태우거나 남부연방기와 총을 든 사진이 발견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남부연방기는 미국 남북전쟁(1861~65) 당시 노예 소유를 인정한 남부연합 정부의 공식 깃발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이 깃발이 백인 우월주의 또는 흑인 차별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전 공화당 대선주자 미트 롬니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남부연합 깃발을 즉각 내릴 것을 요구했다. 롬니는 20일 자신의 트위터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사당 앞에 내걸린 남부연합 깃발을 내려라.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인종 증오의 상징이다. 찰스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깃발을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롬니의 분명한 성명은 2016 대선 출마를 노리는 공화당 주자들에게 즉각적인 압력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미국 50개 주에서 유일하게 이 깃발을 공식 게양하고 있다.
한편 루프의 보석 여부 판단을 위해 19일 열린 약식재판에서는 희생자 유족들이 루프에게 용서의 말을 건네는 뭉클한 광경이 벌어졌다. AP NYT 등에 따르면 루프는 이날 구치소에서 화상으로 재판을 받았다. 유족들은 가해자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주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관례에 따라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으로 보이는 루프에게 말을 건넸다.
희생자 미라 톰슨의 유족인 앤서니 톰슨은 “나와 우리 가족은 너를 용서한다”며 “네가 우리의 용서를 참회의 기회로 삼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들을 잃은 펠리시아 샌더스는 “우리는 두 팔 벌려 너를 성경모임에 받아들였지만 너는 내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였다”며 “내 몸에 있는 살점 하나하나 다 아프고 예전처럼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하나님께서 네게 자비를 베풀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판사의 물음에 짧게 대답만 하던 루프는 이 말을 듣자 잠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반응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