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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침략 문구 넣을까 뺄까… 8월 아베 담화 키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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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침략 문구 넣을까 뺄까… 8월 아베 담화 키포인트

입력
2015.03.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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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유감에서 3·1운동 거론까지… 일왕·총리 등 역사인식 발전 거듭

과거사 반성 지우려는 아베, 총리된 후 계속 역사 부정 발언

아베 담화에 국제사회 이목 집중, 中 "내용에 한중일 정상회담 달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입에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국제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베 총리의 다음달 미국 공식방문때 행할 미 의회 연설과 8월 발표될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과거사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지가 향후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2년여 간 역사를 부정하는듯한 발언을 해온데다 2013년엔 “침략의 정의(定義)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까지 했다. 일제 침략에 대한 참회의 뜻을 밝혀온 ‘무라야마(村山) 담화’(1995년), ‘고이즈미(小泉) 담화’(2005년)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주문을 받으면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면서도 “(이전 담화에서) 쓴 표현들을 따지는 것은 자질구레한 일”이라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본 집권당 내부에서 ‘식민지배’‘침략’‘통절한 반성’같은 핵심문구들을 빼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일본의 과거사 부정 움직임 때문에 중국은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성사여부가 ‘아베 담화’데 달렸다고 못박고 있다. 역대 일본 총리의 담화 및 과거사 관련 언급을 되짚어 보면 아베 정권의 과거사 부정 태도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무모한 시도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꾸준히 진전한 일본정부의 과거사 반성

일본정부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처음 반성을 표명한 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직전이다. 한일회담 조인을 앞두고 방한한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외무장관은 이동원 외무장관이 한국 국민의 대일 감정을 설명한 데 대해 “양국간의 긴 역사 중에 불행한 기간이 있었던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며 깊이 반성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후 오랜 기간 침묵을 지키던 일본은 1980년대 들어 역사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일본정부의 역사인식에 대해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자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나카소네 야스히(中曾根康弘) 총리는 1983년 8월 “과거에 폐를 끼치고 참해(慘害)를 입힌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했고, 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의 국빈방일 때는 “다대한 고난을 끼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의 과거사 반성은 더욱 전향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1955년 체제’이후 철옹성을 쌓아온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는 시기와도 일치한다. 노태우 대통령이 국빈 방일한 1990년 5월24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貴國)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1993년 8월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가 나오기에 이른다. 이 담화를 통해 위안소 설치ㆍ운영과 위안부 모집에 정부와 군이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고 적시했다. 그 해 8월23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는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과 슬픔을 가져온 것에 대해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며 처음으로 침략과 식민지 지배란 표현을 명시했다. 민주당 결성의 주역인 호소카와 총리는 그 해 11월 경주를 방문해 한국민이 모국어 교육이 기회를 빼앗기고, 창씨개명을 강제 당했으며 군대 위안부 등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강요당했다고 인정했다.

이 같은 일본정부 역사인식의 진전은 마침내 1995년 8월15일 패전 50주년을 맞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특별담화가 나오는 디딤돌이 된다.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쳤으며, 역사의 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고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는 게 골자다.

사회당 출신 소수파였던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는 긴박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국회논의를 거치면서 문구들이 약화되자 각의결정으로 담화를 추진했다. 아베는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될 당시 자민당 강경파 의원들로 구성된 ‘전후 50주년 국회의원연맹’ 사무국장 대리였다. 담화 발표 직전 중의원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대한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담은 전후 50주년 결의안을 발표했을 때 반대했고, 국회결의에도 자리를 박차고 불참했다. 각의결정이 가능했던 건 무라야마가 “반대하면 내각에서 파면시키겠다’는 언질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무라야마 담화가 나올 당시 일본사회는 역사인식이 개선된 상황이었고 전후 50주년이란 분위기도 작용했다”며 “이 담화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모두 관련된 동아시아의 공공재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후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담화에선 3ㆍ1운동이 거론되고 “한국인의 의사에 반한 식민지배”란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는 1910년 한일병합이 강제적으로 이뤄진 ‘무효’란 우리 입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공하는 셈이어서 매우 중요한 담화다.

반성 담화와 망언의 끝없는 반복

1990년대 과거사 관련 총리의 공식 담화가 진화해온 반작용으로 일본 정치인들 사이에선 망언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 공식입장은 달랐지만 정치인들의 발언엔 일본사회 일부의 정서가 담겨있음도 부인하기 힘들다. “난징(南京) 학살은 조작”(1994년 5월 나가노 시게토 ㆍ永野茂門 법무장관) “아시아는 일본 덕분에 유럽의 식민지로부터 대부분의 국가가 독립했다”(1994년 5월 나가노 법무장관) “식민지 시대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 한일합방이 무효라면 국제협정은 성립되지 않는다”(1995년 11월 에토 다카미ㆍ江藤隆美 총무장관) 등의 망언이 한 중 국민의 분노를 샀다.

번역에 따른 뉘앙스 차이로 오해를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키히토 일왕의 사과 문구인 ‘통석의 염’ 표현을 둘러싸고 당시 우리 정부 국무회의에선 일부 장관들이 ‘통석’의 의미가 우리 국어사전에는 ‘몹시 애석하게 여김’으로 나와있다는 점을 들어 진정한 의미의 사죄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가해자란 위치를 망각하고 마치 남 얘기하는듯한 표현이란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아베, 새 어법으로 슬쩍 넘어갈 수 있을까

전후 70주년을 맞아 아베 담화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현재로선 아베 정권이 무라야마 담화 계승 입장을 밝히면서도 담화의 핵심적인 문구를 교체해 실질적인 수정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베 정권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이란 문구를 사용하는 것을 매우 꺼리고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20일 차세대당의 와다 마사무네(和田政宗) 참의원이 무라야마 담화에 명시된 식민지지배와 침략의 정의를 묻는 질의서에 “식민지지배 및 침략의 정의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어 대답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정부 답변서를 내놓았다.

전후 70년 담화를 추진하는 자체가 다른 목소리를 내려는 의도란 시각도 있다. 일본 내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무라야마는 전후 50주년, 고이즈미는 동양에서 환갑을 뜻하는 60주년 의미가 있지만 70주년은 꼭 할 필요가 없는데도 내용에 불만이 있는 아베가 스스로 만든 것”이라며 “미래에 관한 언급과 과거에 대한 것을 어느 정도 비율로 담을 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에 대한 언급을 안 할 수 없겠지만 기존의 단어를 쓰진 않을 것”이라며 “미래와 과거가 적절히 언급돼 일본서도 인정받는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과 비슷하게 갈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과거사 반성, 사죄,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침략과 식민지배 등 세 가지가 포함될 지가 열쇠”라고 짚었다. 그는 “일본인들에겐 사죄를 많이 해 피곤하다는 인식도 있다”며 “아베 정권은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립돼 그런 여론을 배척하기 힘든 입장”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일본사회 내부에서 과거 반성과 주변국과 미래 도모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란 인식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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