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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호랑이가 이리와 학을 넘어서려면

입력
2017.10.23 20: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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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 등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송영무 장관이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방부, 국군기무사령부 등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송영무 장관이 위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호랑이 상이다. 관상에 정통한 정부 고위관료의 평가다. 첫눈에 확 띄는 부리부리한 눈매에는 일격으로 숨통을 끊는 맹수의 기운이 묻어 있단다. 반면 송 장관의 전임자인 한민구 전 장관은 학을 연상케 한다. 우악스러운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매한 스타일이다. 반목하는 적도 없지만, 포효하는 장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내친김에 인물평을 한 명 더 부탁했더니, 한 전 장관에 앞서 국방수장을 지낸 김관진 전 장관은 이리와 닮아 있다고 한다. 눈에서 레이저를 뿜어내며 상대를 노려보던 앙칼진 표정은 쇳소리가 들리는 듯 차갑고 섬뜩하다. 이처럼 최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인사들은 하나같이 캐릭터가 뚜렷하다.

호랑이는 홀로 다닌다. 딱히 무리를 거느리지도 않는다. 주변에 우군이 없다 보니, 위기에 몰리면 매번 목숨 걸고 맞닥뜨려야 한다. 송 장관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되고, 취임 후에는 온갖 말 실수로 구설에 올라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것과 비슷하다. 지난달에는 대통령의 최측근을 향해 거침없이 사이다 비판을 퍼부었다가 청와대의 이례적인 공개 경고를 받고 완전히 체면을 구기며 거취마저 흔들렸다.

무엇보다 호랑이는 제 영역을 벗어나면 맥을 못 춘다. 맹수의 왕으로 군림하지만, 드넓은 초원을 호령하는 사자와 달리 우거진 숲 속에 웅크려 먹이를 노린다. 송 장관 또한 사석에서는 좌중을 압도하지만, 카메라를 들이대는 국회에 출석할 때면 유독 중요한 순간에 얼버무려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송 장관은 “나더러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란 말이냐”며 소신을 밝혔다고 항변하지만, 말에 앞뒤가 맞지 않다 보니 “이래서야 안보를 믿고 맡길 수 있겠나”라는 탄식이 쏟아졌다.

좌충우돌하던 ‘트러블 메이커’ 송 장관이 취임 100일을 갓 넘겼다. 그 사이 북한의 핵ㆍ미사일 폭주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얄궂지만 안보위기는 국방부 장관에게 기회가 되기도 한다.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거치면서 발탁된 김관진 전 장관은 매서운 눈빛 하나로 국민들의 과분한 성원을 한 몸에 받았다.

송 장관이라고 다를 바 없다. 순진한 기대에 젖어 전술핵 재배치를 거론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서야 꼬리를 내린 우유부단은 한번으로 족하다. 얼마나 과감하고 치밀하게 상대를 옭아매느냐가 관건이다. 미국과 북한을 향해 절름발이 호랑이마냥 으르렁대며 큰소리만 내다가 뒤로 빠질 게 아니라 이리의 집요함으로 물고 늘어지는 근성을 보여줄 때다. 28일 서울에서 한미 국방장관이 만나는 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사냥 능력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다.

취임 첫 해에 가장 곤욕을 치른 건 한민구 전 장관이다. 28사단 윤 일병 사망사건이 터지면서 무려 1년6개월 간 후속조치에만 매달려야 했다. 신임 장관으로서 청사진은커녕 “존재감 없다”는 비아냥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새로운 건 손도 못 댔다”고 토로하던 국방부 당국자의 곤혹스런 표정이 생생하다. 그러면서 뒤에 한발 물러서 있는 학의 이미지는 더 굳어졌다.

이에 비하면 송 장관의 여건은 더할 나위 없다. 대통령이 든든한 뒷배가 돼 장관과 한 목소리로 국방개혁을 외치는데다,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국방예산이 늘어 실탄도 충분하다. 여기에 변화를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까지 더해졌으니 순풍에 돛 단 셈이다. 이리와 학의 시절을 거치면서 뒷전으로 밀렸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속도를 내는 건 이제 오롯이 호랑이의 몫이다.

한때 사냥에 능하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이리떼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군 내부의 줄서기를 조장하고 사드 배치를 독단으로 밀어붙인 과정도 이미 예상했던 바다. 눈앞의 썩은 고기에 취해 제 배만 불린 탓이다. 호랑이는 무엇이 다른지 보여줄 때다.

김광수 정치부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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