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천국’ 제주에 봄바람과 함께 전기차 바람이 불고 있다. 올해 제주에 민간 보급되는 전기차는 3,963대. 전국 물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다른 지자체들도 지난해보다 보급 대수가 늘어나자 전기차 업체들은 늘어난 시장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8,000대 시장을 잡아라
전기차는 같은 모델이라도 가솔린이나 디젤 엔진 자동차에 비해 가격이 2,000만원 이상 비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없이 구입하는 것은 힘들다.
올해 환경부가 지급하는 국비 보조금은 지난해보다 300만원이 줄어 1,200만원이다. 지자체 중에 전남 순천시가 가장 많은 800만원을 준다. 제주는 지난해와 같은 700만원, 전남 영광군도 700만원이다. 서울과 경기도 보조금은 모두 500만원이다.
만약 제주에서 전기차를 구입하면 환경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합쳐 1,900만원이 나오고 개별소비세(200만원) 교육세(60만원) 취득세(140만원) 등이 400만원까지 감면돼 내연기관 자동차와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게다가 최대 400만원인 충전기 설치비용도 국비로 지원된다.
올해 국비 보조금이 지급되는 전기차는 지난해 3,000대에서 5,000대 증가한 총 8,000대다. 이 숫자는 곧 올해 국내 전기차 시장 규모다.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에 비하면 미미한 대수이지만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업체들은 지난 1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1단계 우선보급이 진행되는 제주에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제주는 지난해까지 접수를 받아 추첨을 했지만 올해부터 선착순으로 전기차 보급 방식을 변경했다. 수천 명을 한 곳에 모아 놓고 추첨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접수 취소 등 허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제주도는 우선 보급한 뒤 남는 물량을 다음달 18일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개막과 함께 선착순 보급한다.
출전 선수들 지난해 ‘성적표’
지난해 제주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별 민간보급 공모에 출전한 전기차는 기아자동차 ‘레이EV’와 ‘쏘울EV’, 한국지엠(GM) ‘쉐보레 스파크EV’, 르노삼성자동차 ‘SM3 Z.E.’, BMW ‘i3’, 닛산 ‘리프’다. 이 가운데 지난해 1위 쏘울EV는 1,166대가 팔렸다. 수출 물량도 7,286대여서 국산 전기차 중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쏘울EV는 지난해 선수들 중 용량이 가장 큰 배터리(27㎾h)를 장착해 1회 충전 시 상온에서 최대 148㎞를 달릴 수 있다. 이 또한 1위였다.
SM3 Z.E.는 1,043대가 판매돼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이 차는 실내 공간이 넓어 서울과 대구 등에서 전기택시로 낙점됐다. 다만 수출은 10대에 그쳤다. 해외에 르노-닛산 얼라이언스가 다른 전기차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BMW i3는 가장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367대가 팔리며 브랜드 파워를 과시했다. 이 차는 지난해 해외에서 2만3,690대나 판매된 인기 모델이다.
경차에 기반한 레이EV(198대)와 스파크EV(151대)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2012년 초 출시된 레이EV는 차체가 작고 모델도 오래돼 올해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스파크EV는 지난해 2,418대가 수출돼 국내에서 부진을 만회했지만 레이EV는 수출 실적이 0였다.
세계시장 누적 판매 1위 전기차 리프는 지난해 국내 판매량이 100대에 그쳤다. 제원상 성능은 다른 차들과 비슷한데 가격이 BMW i3 다음으로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해 해외에서 4만3,558대가 판매됐다.
다크호스는 새 주자 아이오닉
올해는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전용모델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가세해 공모에 나오는 전기 승용차 종류가 7대로 늘었다. 전기차엑스포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 뒤 6월부터 판매 예정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쏘울EV보다 용량이 큰 배터리(28㎾h)와 상온에서 169㎞의 주행거리를 자랑한다. 최고속도는 시속 165㎞. 지난해까지 가장 빨랐던 BMW i3(150㎞/h)를 앞섰다. 그런데도 가격은 전기차 중 최저인 4,000만원으로 쏘울EV(4,150만원)보다 싸다.
이 같은 장점 덕에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현재 진행 중인 제주도 우선보급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제주에서 가장 많은 지점(14개)을 보유한 것도 경쟁사들보다 유리한 점이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업체간 경쟁이 치열해 공모가 끝나야 정확한 숫자를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앞세워 올해 국내 전기차 시장의 50%를 점유하기 위해 정비 및 충전 인프라 확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신차 효과를 등에 업은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압승을 예상하지만 “성능이 기대만 못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최대 주행거리 169㎞는 국내에서 1위일 뿐 주행거리가 400㎞ 내외로 알려진 미국 테슬라나 중국 BYD 전기차에 미치지 못한다. 연말 본격 양산에 들어가는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 ‘볼트EV’도 한번 충전으로 약 321㎞를 달린다. 업계관계자는 “올해 아이오닉 일렉트릭 돌풍이 거세도 새로운 전기차가 등장하는 내년 시장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김창훈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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