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안쪽 正堂에 고종 황제 어진도
1층 응접실 벽엔 대형 태극기 걸려
첨단 기법으로 벽색깔·양식 등 재현
20일 낮 미국 워싱턴 도심 13번가 로간서클 1500번지. 우리 정부가 2012년 350만달러(40억원)를 주고 사들인 붉은 벽돌 외벽의 구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 1층이 북적거렸다. 지상 3층ㆍ지하 1층 연면적 452.94㎡ 건물을 복원하는 290만달러(32억원) 공사를 따내려는 현지 건축업자들이었다. 마감 시간인 오후 2시까지 치열한 눈치작전을 펴다 이들은 입찰 주관사 팀하스 직원에게 서류를 제출했다. 팀하스는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건축가 하형록씨가 설립한 건축회사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은 모두 공사관 건물과 같은 19세기 후기 빅토리안 양식 건물의 복원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달 말 낙찰 기업이 정해지면 올 상반기 중 공사가 시작돼 1년 뒤인 내년 여름이나 가을 무렵에는 건물 내외부를 완벽하게 과거로 돌려 놓게 된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 후 떼버린 대한제국 황제 어진과 태극기도 그때 모습 그대로 귀환한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11년 만에 대한제국의 대미 외교 근거지를 되살리는 사업이 본격 시작됐다.
이 건물은 1891년 고종 임금이 2만5,000달러 거금을 내려 매입했다. 이후 16년간 대한제국 자주 외교의 장으로 활용됐으나 1905년 일본이 외교권을 강탈하면서 기능이 정지됐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직후 일제가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해 바로 미국인에게 10달러에 되팔어 버린 ‘망국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이번 복원 공사에는 첨단 과학기법이 동원된다. 먼저 지금 흰색인 건물 벽의 서너 겹 페인트 층을 벗겨내 연대측정으로 대한제국 당시 색깔을 알아낸다. 어렵게 찾아낸 두 장의 당시 사진은 3차원 분석을 거쳐 1, 2층 공간 복원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지금은 텅 빈 1층 응접실은 1년 뒤 대한제국의 상징인 이화무늬 장식 책상과 의자로 채워진다. 벽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린다. 입찰 안내판이 놓였던 거실에는 역대 공사 사진이 놓인 탁자와 응접 세트가 자리잡는다.
복원 공사의 핵심은 2013년 주미공관 중수명세서(駐美公館 重修明細書)에서 확인된 거실 안쪽 정당(正堂)이다. 본디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자료는 없지만 거실 뒤 공간으로 추정되는 이 곳에 고종 황제의 어진(御眞)이 걸리게 된다. 보름 간격으로 망궐례(望闕禮ㆍ한양 궁궐 쪽으로 절하는 의례)를 하던 신하들은 사라졌지만, 일본인이 떼어낸 그 자리로 황제가 귀환하는 셈이다. 주미 대사관 당국자는 “복원 공사와 함께 당시 진열됐던 진본 태극기나 가구를 찾는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1층과 목조 계단으로 연결된 2층은 공사 개인숙소와 서재로 부활한다. 다만 100여년간 주인이 바뀌면서 손상된 3층은 원형 복구 대신 부서진 기둥을 깔끔하게 고쳐 한미관계 사료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태극기가 걸릴 옥상과 3층을 잇는 사다리 계단도 안전하게 정비된다.
공사관이 복원되면 대한제국 시절의 영광뿐만 아니라 수치스런 역사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1890년부터 1년간 재직한 3대 공사가 ‘을사5적’이완용이기 때문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사료 수집 과정에서 이완용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1889년 동료들과 공사관 입구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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