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이제 꽤 익숙한 단어가 됐다. 작년 수영선수 박태환(28)은 CAS 덕분에 리우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심판 매수 사건 때문에 최근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박탈이라는 징계를 받은 프로축구 전북 현대도 CAS 항소를 준비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200명 넘는 CAS 중재위원이 있는데 박진원(71) 오멜버니&마이어스 서울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이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2007년부터 CAS에서 활동 중이다. 2014년에는 도핑테스트 절차 위반으로 선수 자격 1년 정지 처분을 받았던 배드민턴 이용대(29)ㆍ김기정(27)을 대리해 구제하기도 했다. CAS 본부는 스위스 로잔에 있지만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대회 때는 신속한 판정을 위해 현지에 중재위원을 상주시킨다. 리우올림픽 때도 12명이 파견됐는데 박 변호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를 20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리우올림픽이 역대 대회 중 중재 신청이 가장 많았다고 하는데.
“통상 올림픽은 10여 건 심리를 하는데 이번에는 40건 가까이 됐다. 도핑으로 출전 금지된 러시아 선수들이 대거 제소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다섯 건 중 세 건도 러시아 선수들이었다. 작년 8월 2일 리우에 도착한 날 새벽부터 일했다.(웃음)”
-러시아는 정부와 정보기관까지 나서 조직적으로 도핑을 시도했다고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겼다.
“러시아 정보기관 요원이 배관공으로 위장해 소변 샘플을 바꿔 치기 했다는 기상천외한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과장이다. 세계반도핑기구(WADA) 보고서에 그런 내용은 없다. WADA는 핵심 증거인 감청 내용에 대해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이 역시 정보기관으로부터 확보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와 미국의 힘겨루기 성격도 분명 띠고 있었다.”
-국제 스포츠 중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떤가.
“내가 처음 CAS에 합류할 때보다 훨씬 나아졌다. 특히 이용대와 박태환 사건은 법률가, 체육단체, 관계자, 언론 모두 이쪽 분야를 충실히 공부하고 인식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어떤 분야든 논쟁적인 사안이 생겨야 발전이 있다. 싸움이 없는 곳에 변호사가 달려들 리 없지 않나.(웃음) 앞으로 이쪽 분야에 좋은 후배 변호사가 탄생할 수 있게 적극 도울 생각이다.”
-박태환 사건 당시에는 상당히 말을 아꼈는데.
“CAS에 속한 내가 의견을 말하기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소위 전문가라는 몇몇 분들이 언론을 통해 CAS에서 박태환이 패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고 의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도핑에 관해 이중처벌은 하지 말라고 확실히 규정했고, 대한체육회는 준수할 의무가 있다. 그럼 결론은 뻔한 것 아닌가.”
-당시 체육회 안팎에서는 CAS 결정에 강제성이 없으니 따를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나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IOC 탈퇴하고 올림픽도 나가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만나본 몇몇 외국 위원들도 ‘박태환 건은 아주 심플한 사안이다’고 했다.”
-전북이 CAS에 항소할 계획이다.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가 시작하는 다음 달 7일 안에 결정이 나와야 하는데.
“CAS가 사안의 성격을 감안해 빠르게 결정할 것으로 본다. 전북이 하루라도 빨리 CAS에 공식 접수하는 게 중요하다. 보통은 3명의 패널이 심리에 참가한다. 전북 사건을 예로 들면 이해당자사인 구단과 AFC가 각각 1명씩 그리고 CAS가 1명을 지명하는 식이다. 하지만 패널 선정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전북 건은 CAS가 직권으로 1명만 선정해 신속히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전북이 AFC 판정을 뒤집을 수 있을까.
“법적으로 유죄판결까지 나온 사안이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전북은 구단이 아닌 개인의 행위라고 주장하는데 구단이 이런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소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구단은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일탈이 발생했다고 CAS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전북은 2월 7일 이후 승소 결정이 나오면 AFC에 손해배상 청구도 고려할 방침이다.
“글쎄. 손해배상 같은 사례는 거의 없어서…. 기업 간 상업적 이득을 다투는 것도 아닌데….”
-앞으로 CAS의 역할은 점점 더 커질 것 같다.
“그럴 거다. 하지만 판정 불이익을 당했을 때 ‘CAS에 가서 해결하면 된다’며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인식은 바꿔야 한다. 경기장 내에서 내린 심판 판정에 대해 CAS는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CAS에서 심판 판정을 뒤집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심판이 뇌물을 받은 너무나 명확한 증거가 있다든지 하는 아주 특별한 사안에 국한된 것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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