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 이틀 만인 12일 저녁 청와대를 나와 서울 삼성동 사저로 돌아갔다. 그는 사저에 도착한 뒤 친박계인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발표한 짤막한 대국민 메시지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헌재 결정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만 했을 뿐이다. 사실상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은 탄핵 심판을 둘러싼 그간의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승복을 촉구해왔다. 헌정 사상 첫 탄핵으로 초래된 국정공백 상황을 슬기롭게 넘기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요 국민적 바람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법치와 민주주의를 강조해왔던 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2004년 헌재가 세종시 수도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곧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헌법에 대한 도전이자 체제에 대한 부정이다”라고 했다. 지난달 27일 헌재 최종 변론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도 “어떤 상황이 오든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면 헌재 결정과 동시에 승복 메시지가 나왔어야 한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국정 혼란을 초래한 과오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국민에 사죄하는 게 도리이다. 공식 입장 표명이 늦어지면 결국 헌재 결정에 불복한다는 뜻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박사모 등 극렬 지지층의 시위 과정에서 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일각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과격 시위를 자신의 수사를 막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세 차례 국민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에는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응하지 않았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번번이 거부했다. 헌재 선고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고 답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헌재 판결을 인정하고 정국 수습과 국민 통합을 위한 노력에 협조해야 한다. 검찰 조사에도 성실하게 응하는 것이 옳다. 헌재 결정을 승복하지 않는 일부 세력에 기대어 또 다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면 국민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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