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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볼모… 정부, 교육청, 의회 “보육대란 서로 네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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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볼모… 정부, 교육청, 의회 “보육대란 서로 네 탓”

입력
2016.01.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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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가 내려보낸 교부금으로 지자체가 충분히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는 정부, 교부금으로는 어린이집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시도교육청, 누리과정 예산편성권을 정파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지방의회. 이들의 한 치 없는 대립으로 ‘보육대란’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들 세 주체들이 주장은 과연 근거가 있을까.

최경환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서울청사에서 누리과정 긴급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누리과정은 교육감이 준수해야 할 법률상 의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영 교육부 차관, 최 부총리, 송언석 기재부 차관, 방문규 복지부 차관. 연합뉴스
최경환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서울청사에서 누리과정 긴급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누리과정은 교육감이 준수해야 할 법률상 의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영 교육부 차관, 최 부총리, 송언석 기재부 차관, 방문규 복지부 차관. 연합뉴스

정부 교부금 4조원… 누리과정에만 쓸 수 있다?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해 정부는 줄곧 “이미 4조원의 예산 전액을 시ㆍ도교육청에 내려 보냈다”고 강조해왔다. 5일 정부 합동 기자회견에서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이영 교육부 차관은 같은 내용의 발언을 되풀이 했다. 특히 최 부총리는 “누리과정 예산에 쓰라고 돈을 보냈는데 (시ㆍ도교육청이) 다른 데에 써 버리고 편성을 못 한다는 것은 관련 법령의 위반”이라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꼭 누리과정에 쓰도록 돈에 ‘꼬리표’를 달아 교육청에 내려 보냈다는 말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별도로 챙겨줬다”는 뉘앙스도 느껴진다.

정부는 과연 누리과정 예산으로 4조원을 내려 보낸 것일까? 교육부는 내국세의 20.27%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내려 보낸다. 이 교부금은 해당 시ㆍ도의 전입금, 교육청 자체 수입과 합해져 교육청 예산으로 활용된다. 20.27%는 법률로 정해진 비율로, 올해는 41조2,284억원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이미 내려 보냈다”는 정부의 설명은 4조원을 따로 챙겨준 게 아니다. 법정 비율이 정해진 41조의 교부금 중 4조원을 누리과정에 쓰도록 강제한 것을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해 10월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한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근거로 든다. 2014년 말부터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지자 정부가 법률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강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행령은 상위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침해한다는 논란의 와중에 있다.

실제 교부금법은 교부금을 “총액으로 교부한다”고 돼 있다. 법은 ‘누리과정’과 같은 목적사업에 쓰라고 강제하지 않은 것인데 시행령이 목적사업을 강제하는 셈이다. 시도교육청은 이 시행령이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교육감의 ‘예산안 편성 및 제출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본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 위법적인 시행령이 ‘누리과정 예산 전액을 이미 내려 보냈다’는 논리로 둔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청… 어린이집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예산편성할 수 없다?

시도교육감들은 교부금법을 근거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편성 거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지나친 형식논리라는 비판도 나온다. 교부금법 1조는 교부금을 ‘지자체가 교육기관 및 교육 행정기관을 설치 경영함에 필요한 재원의 전부 또는 일부’라고 정의하고 있다. 시도교육감들은 다른 법인 영유아보육법에서 어린이집을 교육기관 또는 교육 행정기관이 아닌 ‘보육기관’으로 분류하므로 교육청이 교부금을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지원하는 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누리과정이 “유치원과 관련된 유아교육법 상 교육과정과 어린이집과 관련된 영유아보육법 상 보육과정을 통합해 공통 과정을 운영한다”는 기본취지로 시작된 것이므로 어린이집을 ‘교육기관’으로 볼 수 있다는 정부의 설명도 일정 부분 타당성을 갖는다. 교육부는“유아교육법과 영유아보육법도 각각 어린이집과 유치원 간 연계운영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세수예측으로 교부금이 급감해 부담이 커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도 교육청들이 지방채 추가 발행 등 파국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않고 있는 점도 아쉽다. 올해 교부금이 전년보다 1조8,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지자체의 전입금도 1조원 이상 늘 것으로 관측되는 등 재정 여건이 다소 나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교육청 차원의 자구 노력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감들간 의견도 미묘하게 갈린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재정 실무협의를 통해 접점을 찾게 된다면 우리도 나서야 할 것”이라고 일정 부분 부담을 떠안을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나몰라라... 정파적 이해가 우선인 지방의회

중앙 정치의 정파적 이해에 따라 예산편성을 정쟁화한 지방의회 책임도 크다. 서울ㆍ광주ㆍ전남 등 여소야대인 지방의회 3곳은 어린이집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시도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분 예산마저 삭감해 누리과정 예산을‘0원’으로 만들었다. 경기도의회는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촉발했다. 반면 여당이 다수당인 대구ㆍ경북ㆍ울산ㆍ경남 등 여당이 절대다수인 영남권 지방의회는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을 주장하면서도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 또는 전부 반영했다. 보육비 예산배정이 합리적인 근거가 아닌 정치논리에 따라 갈린 꼴이 됐다.

이미 편성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삭감한 야당의 속내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책임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약으로 표만 얻고 그 비용은 가난한 지방에 떠넘긴다’는 공세가 효과를 얻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자체의 열악한 재정상황을 강조하면서도 영남권 의회가 막대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이유는 “지자체 예산으로 충분히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는 정부와 새누리당의 논리를 뒷받침하려는 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예산집행에 여유가 있는지 면밀히 검토한 흔적이 별로 엿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6(야) 대 4(여)로 의석분포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경기도의회에서는 누리과정 예산편성을 두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지난 12월31일 경기도의회 야당의원들이 누리과정 유치원예산 삭감을 강행하려 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의장석을 점거해 버렸다. 양 당은 8명이 부상하는 집단 난투극을 벌였고 경기도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불러왔다. 더불어민주당은“누리과정은 대통령 공약인 만큼 임시회에서 ‘0원’인 상태로 예산안을 처리할 방침”이라는 입장이고, 새누리당은 “예산안을 기습 처리하려 한 민주당의 사과 없이는 어떤 협상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보다는 여전히 정파적 이익만 따지고 있는 꼴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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