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이 가동을 중단한 지 10일로 꼭 1년이다. 5만5,000명에 달한 북한 근로자들의 생계터전이었고, 한계상황에 내몰린 124개 남측 중소기업엔 회생과 역전(逆轉)의 희망이던 개성공단이다. 남과 북 젊은이들의 웃음과 얘기가 넘쳤던 그곳은 지금 인적이 끊기고 겨울 삭풍만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폐허가 되어 잡초에 묻힌 고려 옛 도읍 개경을 둘러보며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고 슬퍼했던 고려 유신(遺臣) 야은 길재의 시조가 가슴저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온갖 악재 속에서도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꿈을 갖고 공들였던 마지막 보루가 한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졌으니 국민의 실망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평화의 안전판이니 남북교류 협력의 상징이니 하는 의미 부여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다. 남북관계 제로 상태라는 완전한 단절로는 접촉을 통한 변화 유도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더욱 암담한 것은 1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동 재개 희망을 전혀 기약하기 어려운 남북관계 현실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당장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북 핵ㆍ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긴장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얘기다. 당장 통일부는 7일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위반 문제를 들고 나왔다. 달러로 지급되는 개성공단 북측 근로자 임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우려가 있는 한 공단 가동 재개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공단 가동 중단 배경을 놓고 논란이 분분했지만 막무가내로 핵ㆍ미사일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기세에 비춰 정부 입장이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공단 재개를 조급하게 요구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따져 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강도가 계속 높아지는데도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이런 딜레마와 별개로 개성공단 재개를 얘기할 수 없다. 그런 구조에서 벗어날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개성공단 가동 재개가 아니라 민족의 생존자체가 문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개성 공단 재개를 비롯한 남북관계 재정립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분출될 것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가능한한 많은 토론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가야 한다.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로 공장 이전 등 활로를 찾고 있지만 여전히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는 입주 기업들에도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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