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문 대통령은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장관 등 정부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국회가 정해진 기간 안에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임명 수순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증 결과를 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고 저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며 국민 여론이 중요한 판단 기준임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작심 발언은 지금 야당에 밀리면 향후 인사 및 개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이 ‘비(非)외무고시 출신 여성 장관’이라는 강 후보자 상징성에 높은 점수를 준 것도 감안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이 코앞인 데다 내달 G20 회의 등 주요 국가들과의 정상회담도 기다리고 있다. 외교장관 없이 치르기엔 벅찬 행사들이다. 야당, 특히 자유한국당이 사사건건 비판 공세에 나서는 등 강경 일변도로 치달으면서 문 대통령의 운신 폭을 제한한 측면도 있다. 한국당이 특정 후보자가 맘에 안 든다고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까지 언급하고 나선 것은 비판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꼬인 정국을 헤쳐나갈 책임은 결국 문 대통령과 여당에 있다. 문 대통령은 협치와 소통을 입버릇처럼 외쳐 왔다. 협치 없이는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인식의 반영일 게다. 하지만 최근 정국 긴장을 초래한 문 대통령 대응에선 이런 초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국민 여론을 고위공직 임명 기준으로 삼겠다는 건 야당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런 자세라면 굳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열거나 ‘5대 인사 배제 원칙’이니 하는 객관적 기준을 마련할 이유도 없다. 당장 야권이 ‘선전 포고’라며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시절 한국당 못지않은 가혹한 잣대로 장관 후보자들을 모질게 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이 어제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장관 하려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현재의 청문회 행태를 비판한 것은 여권 지도부가 ‘내로남불’ 식 사고에 젖어있음을 보여 준다. 문 대통령과 여당은 좀 더 낮은 자세로 인사 원칙을 어긴 데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야당도 명분을 갖고 수습에 나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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