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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근혜와 세월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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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근혜와 세월호 이후

입력
2017.03.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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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ㆍ인양으로 박근혜ㆍ세월호 한 매듭

지도자만 바뀐다고 세상 달라지지 않아

권력감시ㆍ안전의식 끊임없이 되새겨야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선 '화이트 마린'호가 31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포 신항에 도착해 접안 하고 있다. 목포=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선 '화이트 마린'호가 31일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포 신항에 도착해 접안 하고 있다. 목포=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가 탄핵되자 세월호가 떠올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해양수산부가 인양 계획을 공개한 시점이나 방식에 의구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탄핵을 기다렸다 세월호를 건져 올렸다고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와 ‘세월호’는 실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도에서 끝나고 만 지난 정권을 설명하는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이다.

박근혜는 대형 재난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국가 지도자였다. 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지만,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7시간’까지 생각하면 그가 이 ‘인재’를 책임져야 할 핵심 인물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교통사고’라는 인식이 낳은 필연인지 박근혜정부와 그 주변 사람들은 돈 낭비 운운하며 인양에 소극적이었다. 눈물 마를 날 없던 유가족들의 젖은 눈을 애써 외면했다. 대통령 탄핵과 구속의 원동력이었던 촛불 시위의 바탕에는 이런 권력의 행태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서려 있음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역사는 세월이 지난 뒤 그 의미와 맥락이 분명해지는 경우를 보지만, 박근혜 탄핵ㆍ구속 사태가 사고 이후만이 아니라 애초 세월호와 묘하게 얽혀 있었다는 인상도 든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아니라 대통령이 중심인 ‘권력형 부정부패’라고 불러야 할 이 사태가 처음 공론화된 것은 공교롭게도 2014년 4월이었다. 세월호가 가라앉기 1주일 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이 최순실 딸 정유라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전 특혜 의혹을 제기한다. 그때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비호 탓에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사태의 실마리가 함축된 문제 제기였다. 정유라의 승마는 ‘문체부 공무원 부당 좌천’ ‘삼성으로부터 받은 뇌물’ 등 검찰이 박근혜 범법 행위의 일부로 파악한 내용과 직접 관련이 있다. 국정은 그때 이미 비정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세월호는 침몰했고, 컨트롤 타워는 시간을 허비해 결국 304명을 수장시켰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법적 절차를 거쳐 파면된 뒤 뇌물죄 등 혐의로 구속까지 되었다. 그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던 날 진도 앞 차가운 바닷속에서 3년을 웅크려 있어야 했던 세월호가 비로소 뭍에 닿았다. 두 사건 모두 법정 공방이나 추가 진상조사 등 남은 일이 산적하지만, 한 단락 매듭은 지었다는 느낌이 든다. 세계가 놀라는 촛불 시위의 성과에 가슴 뿌듯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가슴에 대못 박힌 세월호의 아픔이 조금은 치유받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박근혜’와 ‘세월호’에서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거듭 돌이켜 봐야 한다. 대선이 닥쳤다. 이제는 무능하고 불통하고 부정한 국가 지도자를 뽑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권력형 부정부패로 탄핵받는 대통령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런 각오로 지금 후보자들을 살피고 투표에 임하려는가. ‘세월호’ 같은 참사의 재발을 막는 것은 더 근본적인 과제다. 세월호 사고 한 달 뒤 온 국민이 안전 규정을 지켜 이런 일만은 막자고 소리 높이던 때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9명이 숨졌다. 그해 10월에는 판교 테크노밸리 광장에서 환풍구 위에 올라가 공연 보던 사람이 추락해 16명이 죽었고, 또 한 달 뒤 불법 건축한 담양의 펜션 바비큐장에서 불이나 대학생 5명이 사망했다. 지난달 화성 상가에서 용접 공사 중 일어난 불로 4명이 숨졌는데, 알고 보니 설치된 화재경보기를 일부러 꺼 놓았다.

이런 일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이 고통스러웠던 3년을 반복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 촛불 시위에 감탄했던 세계는 한국을 비웃을 것이다. 나쁜 지도자를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다.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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