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큐멘터리팀이 발굴하고 세계종교평화협의회가 입수한 ‘고려에 전달된 교황 요한 22세의 편지’는 잘못된 해석이란 주장이 나왔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교수는 최근 발간된 학술지 ‘교회사학’에 실린 글 ‘교황 요한 22세가 보낸 편지에 나오는 Regi Corum은 고려의 충숙왕인가?’를 통해 이런 주장을 내놨다. 앞서 다큐멘터리팀과 세계종교평화협의회는 바티칸기록원에서 두장짜리 편지 사본을 입수, 이 편지가 14세기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충숙왕에서 보낸 편지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다면 16세기 말에나 처음 가톨릭을 접했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는 셈이다.
그러나 안 교수는 이런 주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충숙왕에게 보낸 편지라는 주장이 성립하면서 첫 머리말의 ‘Regi Corum’을 ‘고려인들의 국왕’으로 해석해야 하는데, 라틴어 문법상 그럴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Corum’은 복수 소유격인데 이런 형태나 나올 수 있는 주격은 ‘Ci’ ‘Cores’ ‘Cori’ 정도다. 그러나 당시 고려는 중국어 발음인 ‘가올리’에서 유래한 ‘Caule’(카울레)가 나라명으로 쓰이고 있었다. ‘Corum’을 ‘고려인들의’이라 옮기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 편지 내용상 일반인들에게도 광범위하게 가톨릭 신앙이 퍼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보이는데 고려에 그런 정황은 없다. 거기에다 이 편지는 요한22세가 베이징 대주교로 임명한 니콜라우스 신부에게 들려 보낸 것으로, 일종의 안전통행증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들고 베이징으로 가서 다시 고려에 들렀다 되돌아간다는 건 상식적이지 못하다. 편지 내용상으로나 주변 정황상으로나 충숙왕에게 보낸 편지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게 안 교수의 결론이다.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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