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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바라는 것

입력
2015.08.2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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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너의 어머니 집에 계시니?”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그의 나이 3세. 배우 강수연의 전설과도 같은 연기 입문 계기다.

아역 스타는 꽤 오래도록 스크린에서 빛을 발하다 사라졌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돌아온 뒤 더 강렬하게 빛을 품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씨받이’)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각각 받았다. 두 영화제가 지금보다 더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을 때였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을 언론으로부터 얻은 첫 배우가 됐다.

배우 이외에는 어울리는 호칭이 없을 듯했던 강수연이 6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위촉돼 영화인으로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25일 열린 제20회 부산영화제 상영작 기자회견에선 안정적인 면모를 선보였다. 하지만 영화제의 ‘얼굴’ 정도로 역할이 한정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은 엄존한다.

미국에는 연기뿐 아니라 영화제 운영으로도 명성을 높인 배우가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선댄스영화제(레드포드가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연기한 선댄스키드에서 이름을 따왔다)를 1985년 창립해 북미지역 최대 독립영화 축제로 일궜다. 로버트 드니로는 2002년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를 만들었다. 2001년 9ㆍ11테러로 경기 침체를 맞은 트라이베카 지역의 부흥을 위해서였다. 두 배우의 스크린 밖 행보는 명우가 문화행정가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강수연은 영화와 TV드라마에서 당돌하거나 단호한 모습을 주로 보여줬다. 최근 출연작인 ‘주리’(2013)에서 그는 매서운 성질의 유명 배우를 연기했다. 심사회의 중 분을 이기지 못하고 물잔을 깰 때 부상이 염려될 정도로 강단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이런 강인한 이미지를 부산영화제 운영에서도 보여주기를 바라는 영화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 진통으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금 삭감 등 부산영화제는 크고 작은 수난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영화 ‘베테랑’에 등장해 극장 밖에서도 애용되고 있는 한 대사(“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의 ‘원작자’가 강수연이다. 영화인이 모인 한 술자리에서 일갈한 말을 류승완 감독이 차용했다. 부산영화제가 안팎의 압력이나 회유에 흔들지 않도록 강수연 위원장이 든든한 방파제가 됐으면 좋겠다. 부산영화제가 아직은 ‘가오’(위신) 없는 축제는 아니니까.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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