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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명한 실패들의 바깥

입력
2016.01.2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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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난 말이지. 소학교 5학년이 되도록 모택동의 이름이 모주석인 줄 알았지 뭐니.” 조선족 출신으로 중국과 한국 양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금희(錦姬, 본명 김금희)의 단편소설 ‘봉인된 노래’(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창비, 2016)에서 외삼촌이 조카인 소설화자 ‘나’에게 하는 말이다. 외삼촌의 이름은 이념(李念)인데, 1976년 모택동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 태어났으니 그 뜻을 잊지 말라는 부친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나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말았는데, 기시감(旣視感) 때문이었을 테다.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소장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18년의 기간은 1963년생인 내 성장기와 고스란히 포개진다. 내 세대에게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대통령 앞의 인명이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나도 ‘국민학교’ 고학년이나 되어서지 싶다. 하긴 그 시절은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문교부장관도 늘 같은 사람이긴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늦가을 아침 교실에서 ‘대통령 유고(有故)’라는 말의 의미를 서로 캐어묻던 광경이 떠오른다. 그 유일무이한 절대적 대통령이 죽을 수 있으리라고는 누가 생각이라도 했으랴. ‘봉인된 노래’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개 대국의 강력한 리더이자 전국민의 유일한 이념적 기둥이었던 모, 말년의 모가 친히 일으켰던 문화대혁명의 붉은 풍파가 수습되기 전의 얼떠름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그렇듯 강대한 그들의 정신적 지주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얼이 반쯤 나간 상태로 눈물을 흘렸다.”

문혁이라는 역사적 재앙을 불러온 모택동 사후 중국이 개방개혁의 이름 아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적극 수용하는 길로 나아간 것은 두루 아는 일이지만, 오늘날의 중국만 보고 그 과정이 순탄했으리라 짐작하기에는 ‘얼떠름한 분위기 속에서 흘린 눈물’이 만만치 않았을 테다. 이념적 기치를 내건 정치적 반발 말고도, 뼈대만 남은 이념의 향수나 우상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구세대의 지체나 부적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금희가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외삼촌 ‘이념’이란 인물은 묘한 지점에서 그런 패배한 역사적 흐름의 잔영 속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는 힘이 있다. 한때의 사회주의 이념조차 허물지 못한 봉건적 가부장제의 구습이 외아들에 대한 과잉보호와 과잉 기대로 번갈아 나타나는 가운데 외삼촌은 대학 때까지 우수한 학생이자 집안의 총아로 자라나지만, 어쩐 일인지 번번이 좋은 직장도 걷어치워버리고 결국은 매사 ‘세상 탓’만 하는 독선적인 얼치기 주정뱅이로 가족의 짐이 되고 만다. 화자인 조카는 외삼촌을 일러 “고집스러운 성격에다 특이한 가치관”을 가진 이라고 말을 해놓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족의 희생은 나 몰라라 하고, 도박 빚에 허우적거리다 출가한 누이에게까지 수시로 손을 벌리는 이 인물은 그저 유아적이고 무책임한 실패한 인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외삼촌의 실패를 단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문혁 세대 부모의 과보호가 있었고 모택동 사후 엄청난 세상의 변화가 있었대도, 결국 그는 자기연민에 빠진 무능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버리고 말 때 그의 실패는 단순하고 자명한 실패가 된다. 그러나 조카에게 포착된 어느 밤의 한 장면을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설날 밤 우연히 북한 혁명가극의 노래를 듣다 멍하니 황홀경에 빠져들던 외삼촌의 설명할 길 없는 신비스러운 표정. 그 집단적 호소의 노래는 왜 그를 사로잡았는가. 그는 혁명 세대도 아니지 않는가. 알 길 없는 대로 이 순간, 그의 실패는 조금 더 복잡한 인간과 역사의 실패가 된다. ‘단 하나의 역사’를 기술하려 하고, 역사의 의미를 독점하려 할 때 이 착잡한 실패들은 계속 망각되고 버려질 수밖에 없으리라. 누구에게나 ‘봉인된 노래’는 있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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