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범죄 살인죄 적용까지… 아쉽지만 살인죄 인정 첫 관문 넘어
언론 보도로 피해 아동 트라우마 커… 아동범죄 사회 인식 변화해야
9월 29일 아동학대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2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사법처리와 사회적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10월 16일 부산고법은 의붓딸 서현(가명ㆍ당시 8세)양을 지속적으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울산 박모(41)씨의 항소심에서 1심이 적용한 상해치사죄 대신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상고를 포기해 그대로 확정됐다. 아동 학대치사에 살인죄가 적용된 첫 사례다. 울산 서현이 사건이 알려진 후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많은 부모들이 목소리 높여 요구해 온 ‘엄중한 처벌’이 법정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여성 변호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서현이 사건을 비롯해 의붓딸을 학대해 사망케 하고 그 언니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 했던 칠곡 계모 사건, 시간을 거슬러 성폭행 범죄인 ‘도가니 사건’과 ‘조두순 사건’ 등 숱한 아동범죄 사건의 변론을 맡아 온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회)가 그들이다.
이명숙 여성변회 회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육체적 체벌은 폭행이자 학대이며 그 연장선에서 일어난 죽음은 살인”이라고 단언했다. 개입하는 사건마다 폭발적인 여론의 관심을 끌어 모으며 재판부나 수사기관과도 마찰을 빚어온 그는 스스로 “싸움닭이 됐다”고 하고 주변에서 “정치권 입문을 위한 예비작업”이라는 말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소란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전환점도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분노로 이끌어낸 제도적 변화의 이면에는 냉정함을 갖고 따져볼 문제들도 많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일반사건보다 살인죄 적용의 폭을 넓히는 것에 대한 법리적인 문제에서부터, 일반 부모들의 체벌 또한 ‘폭행’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의 문제 등을 이 회장에게 물었다.
_아동학대 범죄에 처음으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된 판결을 받았다. 예상했나.
“예상했다. 1심에서도 살인죄 유죄 판결을 기대했었지만 아니어서 실망했었다. 아이는 사망한 후에 물에 넣어졌고 피 다 닦고 아이 잠옷과 팬티 모두 세탁기에 돌렸다는 기록도 나온다. 그리고 화장실 욕조에 묻은 피도 닦고 피 묻은 수건도 빨고 그러고 나서 신고한 거다. 정말 아이를 살릴 마음이 있었으면 갈비뼈 16개가 부러졌는데 바로 119에 신고했어야 했다. 어떻게 그렇게 증거를 다 없앤 다음에 신고하나. 게다가 갈비뼈가 폐를 찔러서 순식간에 급사한 경우였는데 그렇게 하고 나서 신고하는 것 자체가 (살인 고의를 숨기기 위한) 증거인멸이다. 당연히 살인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이런 생각으로 살인죄로 확신했는데 1심에서 안 돼 속상했다.
재판 과정에서 특히 검찰이 정말 열심히 해 준 게 주효했던 것 같다. 공판 부장검사는 직접 법정에 들어왔다. 저에게 수시로 전화해 상의했었는데 “(피해자가 아닌 검찰이) 직접 주장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여성변회가 따로 주장해야 할 부분을 강조해 주셨다. 계모의 상고 포기 후 검찰 역시 상고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었는데 법리적으로 상관 없는 문제인데도 피해자 측에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다. 울산 사건에서 검찰과의 협조는 감동적이었다.”
_피해자 지원 변호사와 검찰의 협조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니, 흔히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법원 앞에는 늘 국민과의 대화, 소통을 강조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소통은 현수막으로 하는 게 아니다. 울산 계모 사건과 광주 세월호 재판은 피해자들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해 준 재판이었다. 피해자 측은 검찰이나 법원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해소된다. 울산 사건은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나 성폭력처벌법 등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검찰이 피해자의 시각으로 보지 못해 자칫 놓칠 수 있는 점들을 검찰이 피해자 변호인 측과 소통하면서 챙겨나간 대표적인 케이스로 기억될 것 같다.”
_그래도 형량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아쉬움은 남아있다. 다만 1심보다는 형이 3년 높아졌고, 살인죄 인정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앞으로 아동학대 범죄에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긴 것에는 만족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 ‘부모는 자녀를 절대적으로 사랑한다’는 믿음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위협적인 힘을 가진 부모가 애들을 때리면 경우에 따라 죽일 수 있다. 외국 역시 한두 번의 아동학대 사건으로 살인죄가 적용되진 않았다.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를 통해 누적된 것이다. 아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폭행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요건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_서현이에 대한 학대는 지속적으로 이어졌었다. ‘살릴 수 있었을 텐데’하는 결정적인 시점이 있다면.
“사망하기 1년 전쯤 서현이가 화상을 입었을 때다. 양손과 양발이 모두 익어버린 상태였다. 뜨거운 물을 끼얹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계모는 샤워하다 입은 화상이라고 했지만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끼얹었으면 자기 손도 화상 입어야 하는데 그런 흔적은 없었다. 화상전문병원의 전문의는 다량의 뜨거운 물이 떨어져야 가능하다고 했다. (의료진이) 화상으로 인한 상처나 (대퇴부) 골절 상태를 봤을 때 바로 개입했다면 멈출 수 있었을 것 같다.
아동학대 사건에선 아이가 (부모의 강압에 의해)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말을 할 때마다 바뀐다. 아이들은 대개 최초로 하는 말이 사실이고, 화상 골절 멍 이런 게 전형적인 증거들이다. 다 간과한 게 아쉽다. 대퇴부 골절이 생긴 이유에 대해 학원에서 오다 넘어졌다, 학교에서 오다 넘어졌다고 말이 바뀌고, 발이 덜렁 덜렁한 데 어떻게 집에 왔냐고 했더니 모르겠다고 했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_자녀들에게 체벌해본 적은 없나? 훈육으로써의 체벌에 대해선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두 딸에게 한번도 체벌을 해 본 적도, 체벌을 고민해 본 적도 없다. 나 역시 부모로부터 안 맞고 자랐다. 그 때문에 아이는 안 맞아도 할 일을 한다는 걸 안다. 물론 다른 생각도 있다. 심포지엄에서 어떤 교수님은 자신도 맞고 자랐고 자기도 때린다고도 하고, 어떤 국회의원은 아이가 선풍기를 부수는 걸 보고 심하게 때렸다고 한다. 여자 변호사 가운데도 때리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내 소유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늘 부모가 옳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체벌 기준을 논하면서 매의 길이를 정하는 방식은 난센스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때려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물어보라. 맞고 나서 정말 달라졌는지. 맞은 것에 대한 복수와 분노, 속상함은 계속 쌓여간다. 폭력이 대물림되는 것일 뿐이다. 학교폭력, 군대 내 폭력, 범죄로서의 폭력 모두가 연결된다. 우리는 너무 쉽게 아이들을 때리면서 키워왔다.”
_칠곡 사건의 피해자를 변호하던 중에 두 차례나 재판부에 의해 법정에서 쫓겨났다(본보 10월 28일자 12면). 학대아동 변호인이 증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와, 변호인 선임계를 내면서 인감증명서를 안 냈다는 이유였는데.
“대구법원이 유사이래 가장 많은 기자들의 취재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재판부가 너무 긴장감을 가져 빚어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그 날 너무 자괴감을 느꼈다. 수임료 없이 내 돈으로 차비 써가며 꼭두새벽에 일어나 대구까지 갔는데 어떻게 이렇게 적대적으로 퇴정시킬 수 있나 싶었다. 제도 시행 초기라 피해자 변호사가 법정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도 법원이나 검찰 측에서 잘 모르는 경우도 아직은 많다. 매뉴얼을 만들 필요성을 느낀다.”
_칠곡 사건을 이 회장이 언론에 흘려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말도 있다.
“아니다. 언론에 알리려 했으면 진작 했다. 우리는 기사가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망한 아동 언니의 진술이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새엄마가 했다’고 진술이 바뀌었을 때도 언론은 모르지 않았나. 나중에 우연히 언론이 알게 돼 기사화된 것이다. 언론을 이용하려 했다면 재판 초기부터 알렸을 것이다. (여론이 재판 결과에 미친 영향은) 열에 한 둘도 안 된다고 본다. 여론에 의해 재판부가 심리적인 부담을 갖게 된다 해도 무죄가 유죄가 되거나 상해가 살인이 되지는 않는다. 여성변회는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게 진실 밝혀 달라는 차원의 의견서를 내고 모니터링을 하는 거지 여론이나 언론을 등에 업고 일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언론 보도로 피해 아동들의 트라우마가 크다. 아이들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표현한 그림을 그렸는데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와 끊임없이 찾아가서 인터뷰하는 모습이었다.”
_정치권에서 러브콜은 없었나?
“아직은 그럴 생각 없다. 사실 그런 이야기는 15년 전부터 들어왔다. 워낙 여성 변호사가 적었던 때다. 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이렇게 힘든 사건을 계속 맡지 않고 다른 쉬운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정책입안 같은 일은 꼭 정치를 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방법을 제안하는 전문가도 있어야 하는데 다 정치로 가 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_아동학대에 대한 신고 의무가 강화됐다. 효과는 어떨 것 같은가.
“(교사나 의사 등 신고의무직종 종사자들이 신고를 안 할 경우) 과태료를 3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높였지만 잘 안 한다. 저는 울산 사건도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문제가 됐던 입양아 사망 사건의 경우 부검하려고 했는데 온 몸에 멍자국이 있어서 의사가 신고했다. 하지만 울산?칠곡 사건 모두 과태료 부과가 안 됐다. 울산시에 진정은 했는데 증거가 없다고 흐지부지된 상태다.
칠곡 사건이나 울산 사건에서도 그랬지만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 모두 본다. 그리고 애들은 집에서 있었던 얘기를 다 일러바친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개입되기 싫어서 말을 안 한다. 귀찮음을 넘어서 남의 문제에 신고를 했다가 ‘왜 허위 신고하냐,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다. 법에는 규정이 돼 있지만 신고자의 익명 보장도 잘 안 된다. 팬티차림으로 쫓겨난 서현이가 불쌍해서 이웃주민이 챙겨주기도 했는데 이런 이웃들도 증언해 달라고 하면 모두 거부했다. ‘난 못 봤다’고 했다. 이게 인식만 바꿔서 될 일인가. 법원이다 검찰이다 불려 다녀야 하는 신고자들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간여로 끝날 수 있도록 절차가 정비돼야 하고 가해 부모로부터의 고소나 위증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어야 한다.
_아동학대범죄특례법 시행으로 달라진 점이 분명히 있지만 여전히 과제가 많다.
“그나마 특례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신고가 많이 늘었다. 하지만 예산이 없다. 내년에야 160억원 정도 예산이 책정됐는데 몇 개 기관과 나누고 나면 기관당 한두 명 월급 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기관당 직원 1명이 100건 정도를 담당하는데 미국은 1명당 담당하는 아동이 14명 수준이다. 게다가 경북 안동의 아동보호기관은 현장으로 가는 데만 1시간이 넘는다. 지금 아동보호전문기관은 50개지만 최소 100개는 넘어야 한다. 상담원도 기관별로 5~10명인데 어떤 지역은 20명 이상 필요한 곳도 있다. 학대가 의심이 되거나, 학대사실을 알면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정작 어느 기관이 나서서 조사를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이상경 인턴기자(경희대 사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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