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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팩트, 통계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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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팩트, 통계와 진실

입력
2018.03.02 13:3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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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체크가 유행이다. 워낙 가짜 뉴스가 많다 보니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유난히 화재 소식이 많았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종로5가 여관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으로 7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야당은 정쟁의 소재로 삼아 문재인 정부에서의 화재 빈발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팩트 체크를 해보면 화재가 아니라 사실은 화재보도 빈도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 자료에 의하면 1월 평균 화재는 2018년 4,011건으로 예년에 비해 많지는 않다. 2017년은 4,012건, 2016년은 4,089건이며 2013년에서 17년까지 평균은 4,005건이다. 이런 통계수치를 알 리 없는 일반인들은 화재뉴스가 많이 보도되면 화재 체감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바타클랑 공연장과 축구경기장 등 6곳에서 총기난사와 자살폭탄 테러 등 동시다발적 테러가 발생해 130여 명이 사망했다. 2016년 7월에는 독일 뮌헨 도심에서 총기 난사 테러로 9명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듬해 5월에는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 콘서트장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8세 어린이를 포함해 22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쳤다. 유럽 전역에서 테러가 끊이질 않자 언론에서는 유럽이 점점 테러위험지역이 돼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공연장이나 도심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묻지마 테러가 자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 심각한 현상이다.

그런데 국제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가 발표한 글로벌 테러리즘인덱스의 통계를 살펴보면, 유럽에서 테러발생빈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테러로 인한 연간 사망자수가 가장 많았던 것은 1970~1990년대이며, 특정한 몇 개 연도를 제외하면 2000년대 이후 사망자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파리, 런던 등의 관광지 테러가 톱뉴스가 되다 보니 유럽에서 테러가 유난히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 테러가 가장 빈번한 곳은 중동, 아프리카 및 남아시아 지역이다.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테러발생 횟수의 84%, 테러 희생자수의 95%가 이 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또한 테러발생 위험이 상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위험요인에 비하면 테러로 인한 사망률은 오히려 높지 않은 편이다.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 10만 명 당 사망원인을 보면 테러로 인한 사망은 0.39명이다. 살인으로 인한 사망은 6.4명, 자동차 사고 사망자는 18.2명으로 훨씬 많다.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위험은 테러로 인한 사망보다 47배 정도 높다.

팩트 체크에서는 통계수치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데이터 기반의 통계가 정확한 사실을 말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계적 사실이 반드시 실체적 진실은 아니다. 2017년 벽두, 한 방송사는 기업법인세율에 관한 팩트 체크를 보도했다. 신년 토론에서 기업법인세 실효세율에 대해 이재명 성남시장은 12%라고 주장했고 전원책 변호사는 16%가 넘는다고 반박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한 사람은 국내 10대 기업의 실효세율을 기준으로 했고 다른 사람은 전체 기업을 기준으로 잡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수치를 제시한 것이다. 팩트 체크를 담당했던 기자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팩트는 흔들 수 없지만 통계는 구부릴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정리했다.

통계 수치가 늘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어떤 기준, 어떤 맥락의 통계치인지가 중요하다. 맥락을 무시하고 단편적 팩트나 유리한 통계수치만 선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건축가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가 “진실은 사실들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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