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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대신 '배우' 나오는 한국영화 없나요

입력
2016.03.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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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패션테러리스트' 기자 역을 충실히 수행한다. 더쿱 제공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한 배우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패션테러리스트' 기자 역을 충실히 수행한다. 더쿱 제공

개인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옥에 티를 찾아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기자가 기자 생활은 잘 아니까.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도입부부터 도전적인 반문을 던지는 듯했다. 어디 감히 우리를 검증하려 하다니. 무채색의 촌스러운 옷차림만 봐도 영화 속 인물들은 딱 기자였다.

어떤 직종의 사람들을 제대로 묘사하는 능력이야 할리우드의 수많은 장점 중 하나다. 특히 ‘스포트라이트’를 보며 놀라웠던 점은 배우였다. 우선 레이철 매캐덤스. ‘노트북’(2004)과 ‘시간여행자의 아내’(2009)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다. ‘나이트 플라이트’(2005)에서 테러범에 맞선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어여쁜 할리우드의 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매캐덤스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성추문을 파헤치는 기자 샤샤 파이퍼를 연기한다. 피해자들의 아픈 사연을 취재하며 가톨릭교도로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가해자에게 당당히 묻는다. “성추행하셨나요?” 맹렬이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을 이 역할은 매캐덤스가 미모를 포기하면서 완성된다. 수수한 블라우스에 바지를 입고 숄더백을 멘 파이퍼는 기자 그대로다. 매캐덤스가 영화 속 차림으로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다닌다면 경험 많은 국내 영화담당 기자들도 알아보기 힘들 듯하다.

한국 영화팬들에게 브루스 배너 박사로 알려진 마크 러팔로, ‘배트맨’ 시리즈의 영웅이었던 마이클 키튼도 취재와 기사 작성을 업으로 십 수년을 살아온 자들처럼 보인다. 심사숙고 없이 구입하고 4,5년은 입은 듯한 그들의 평범한 옷과 무심한 헤어스타일만으로도 영화는 신뢰를 준다. 과잉으로 포장되곤 하는 한국영화 속 기자들과 다르다. 한국영화 속 그들에게선 보통 사람이 아닌 배우의 기운이 과잉 속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청춘스타 앤드류 가필드는 영화 '라스트 홈'에서 주택담보 대출 때문에 집을 뺏기는 막노동자로 등장한다. 비트윈 에프앤아이 제공
청춘스타 앤드류 가필드는 영화 '라스트 홈'에서 주택담보 대출 때문에 집을 뺏기는 막노동자로 등장한다. 비트윈 에프앤아이 제공

내달 7일 개봉하는 ‘라스트 홈’도 별자리에서 서민 구역으로 내려온 할리우드 스타의 모습을 보여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냉혹한 실상을 전하는 이 영화의 주연은 앤드류 가필드다. 그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을 연기한, 2010년대 미국 청춘의 아이콘 중 하나다. 엠마 스톤과의 열애로 자신의 상품 가치를 드높였던 배우이지만 ‘라스트 홈’ 속 데니스 내시는 성좌와는 거리가 멀고도 멀다. 자신과 아들이 나고 자란 집에서 주택 담보 대출 때문에 대책 없이 쫓겨나는 젊은 막노동꾼을 가필드는 자신이 겪은 일인 듯 연기한다. 스타라는 빛나는 수식은 스크린에서 찾을 수 없고 자본주의 사회 밑바닥에서 처절히 몸부림 치는 무지렁이 젊음만이 있다. 가필드는 돈과는 연이 없을 이 영화의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다.

충무로는 어떨까. 어떤 직종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요령부득으로 치부하자. 독립영화 진영에서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들을 꾸준히 만든다고 하나 주류 진영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 더 안타깝다. ‘내부자들’이나 ‘베테랑’처럼 스릴러와 액션 장르의 자장 안에서 한국사회를 비판할 뿐이다. ‘내부자들’의 이병헌도, ‘베테랑’의 황정민도 번쩍이는 외모로 화려한 연기를 펼치지는 않으나 사실성과는 거리를 둔다. 깡패 출신 야심가가 내부 고발을 하는 과정, 강력반 베테랑 형사가 재벌2세를 단죄하는 모습은 달콤하나 판타지에 그친다. 풍부한 재원을 바탕으로 다종다양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미국과 단순 비교할 수 없으나 한국영화의 획일성이 아쉽다. 빛나는 별이 아닌 진정한 서민의 모습으로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이야기해 줄 유명 배우를 한국에서 만날 수는 없는 것인가.wenders@hankook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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