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2일 불행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국과 쿠바 관계 정상화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의 전날 정상회담에서 금수조치 해제, 인권문제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두 나라의 누적된 역사적 앙금이 해소됐는지는 의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쿠바 수도 아바나의 알리시아 알론조 대극장에서 이뤄진 연설에서 “쿠바는 훌륭한 인적자원을 가진 잠재력이 큰 나라이며, 미국과 쿠바와의 진정한 협력을 위해 미 의회에 대 쿠바 금수조치 해제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미국이 쿠바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불행한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은 채 양국 관계 정상화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쿠바 정권이 민감하게 여기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일자리가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과 집회ㆍ시위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권과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등 쿠바 핵심 권력층 인사가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 50분간의 연설은 국영TV를 통해 쿠바 전역에 생중계됐다. 카스트로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 마치자 기립박수를 보냈다.
연설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최대 경기장인 라티노아메리카노 스타디움에서 미국 프로야구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가 국가대표 야구팀과의 경기를 관람했다. 이 경기에는 오바마 대통령과 동행한 미국의 전설적 흑인 야구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유가족도 함께 했다. 로빈슨 유가족의 동행은 야구가 국기(國技)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높고 인구의 20% 이상이 아프리카계인 쿠바의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전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쿠바의 인권문제로 양국 정상은 얼굴을 붉혔다. 카스트로 의장은 관타나모 미군 기지의 폐쇄 및 미군 철수, 쿠바에 대한 미국의 금수조치 해제를 요구했다고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인권상황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상회담 직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인권문제에서 충돌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부는 쿠바의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런 지적에 대해 미국과 쿠바 사이에 인권에 관한 견해가 다르다고 응답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양 정상의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영국 BBC방송은 자사 트위터에 게시된 ‘오바마-카스트로, 아바나 만남의 불편한 마무리’라는 영상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의 기자 회견장 퇴장 직전 모습을 소개했다. 영상에서 두 정상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악수를 나눴는데, 카스트로 의장이 오바마 대통령 왼쪽 팔을 잡고 들어 올리는 장면이 담겨 있다. 양국 관계를 잘 다져나가자는 의미였겠지만, 오바마 대통령 팔이 힘없이 꼬부라지면서 어색한 모양이 연출됐다. AFP통신도 “카스트로가 ‘승리의 팔’을 들어 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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