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주민들, 분뇨 뿌리고 쇠사슬 감은채 저항했지만 공권력에 역부족
알림

주민들, 분뇨 뿌리고 쇠사슬 감은채 저항했지만 공권력에 역부족

입력
2014.06.11 20:35
0 0

경찰 20개 중대 동원 절단기로 쇠사슬 끊고 '알몸 항의' 할머니들 격리

수십분 만에 움막 걷어내 오후까지 5곳 철거하자 한전, 공사 전구간 확대

송전탑 반대 대책위 성명 "싸움 끝 아닌 시즌2 시작"

경남 밀양시가 11일 2,000명이 넘는 공권력을 동원,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 대한 ‘행정대집행’이란 이름의 무력 진압에 나서 마지막 남은 농성장 5곳을 모두 철거했다.

이날 오전 6시부터 시작된 행정대집행은 경찰 20개 중대 2,000여명과 공무원 200여명, 한전 직원 250여명 등이 동원돼 대규모 군사작전처럼 펼쳐졌다.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129번 송전탑 건설현장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장동마을 입구에 설치된 움막 농성장 철거를 시작으로 오전 3곳의 농성장 철거에 이어 오후 남은 2곳의 철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움막 철거가 이뤄진 장동마을 입구 농성장에서는 주민들이 경찰을 향해 미리 준비한 분뇨를 뿌리며 극렬하게 저항했으나 20여분 만에 농성장 철거가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여경을 폭행하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박모(70)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가 오후에 훈방했으며 주민 6명을 한때 격리 조치했다.

송전탑 건설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 온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129번 송전탑 건설 현장에는 이날 오전 6시 37분쯤 경찰이 움막을 덮고 있는 천을 걷어 내자 주민들이 파놓은 구덩이 속에서 속옷 차림의 할머니 6명이 목에 쇠사슬을 감은 채“죽이러 왔느냐”고 절규하며 저항했다. 경찰은 여경들을 투입해 절단기로 목에 감긴 쇠사슬을 끊고 할머니들을 끌어 내 격리시켰지만 할머니들은 이후에도 분을 삭이지 못해 알몸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또 할머니들을 지원하기 위해 움막에 머물고 있던 수녀 20여 명이 스크럼을 짜고 경찰과 대치했으나 곧바로 한 명씩 끌려 나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과정에서 수녀와 주민 등 14명과 경찰 2명이 다쳐 병원으로 후송됐다.

129번 송전탑 부지 움막이 철거된 이후, 인근 산중턱에 위치한 127번 송전탑 농성 움막도 주민과 외부지원단체 회원, 수녀 등 40여 명이 행정대집행을 저지했으나 경찰력에 의해 금새 철거됐다. 밀양시와 경찰은 이날 오후 1시쯤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농성 움막 철거에 이어, 오후 5시쯤 단장면 용화마을 101번 송전탑 부지 농성 움막을 걷어내며 행정대집행을 마무리했다.

한전은 농성장 철거작업이 끝나자마자 5개 송전탑 부지에 경계 울타리를 설치하고 부지정리작업을 벌이는 등 곧바로 공사를 시작했다. 그 동안 밀양지역 52기 송전탑 중 47기는 완공했거나 건설 중이지만 이날 행정대집행에 나선 5기의 송전탑 건립지는 주민들이 농성장을 짓고 극렬하게 반대해 착공이 지연됐다.

이날 행정대집행으로 일단 송전탑 건설 공사는 탄력을 받게 됐지만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밀양 765㎸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총체적인 불법과 폭력으로 점철된 잔혹한 행정대집행’이라고 규탄하며 “밀양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분노와 오기로 똘똘 뭉쳐 끝까지 주민을 지키고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으며 ‘밀양 송전탑 시즌2’를 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130여 개 환경ㆍ노동ㆍ시민단체가 연대한 ‘밀양송전탑전국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행정대집행이 아니라 대화”라며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주민들을 진압하는 정부를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장은 “밀양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고 행정대집행시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인데도 경찰을 대규모 투입해 강행한 것은 요즘같이 안전이 화두일 때 옳지 않은 처사”라고 말했다.

밀양=이동렬기자 dylee@hk.co.kr

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