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 검찰총장 등 검찰 고위직을 지낸 변호사 10여 명이 불법으로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변호사법 제38조 2항은 영리법인의 이사가 되려는 변호사는 소속 지방변호사회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겸직 신청을 해 허가를 받도록 한 법을 어긴 이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 마땅하다.
징계대상으로 거론되는 변호사 가운데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검찰총장을 지낸 송광수 변호사는 2013년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맡아 왔는데 올 주총에서 임기를 3년 더 늘렸다. 그는 총장 시절 삼성그룹의 편법 경영권 승계 및 비자금 수사를 지휘했다. 법무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한 김성호 변호사는 그룹 총수가 사법처리 돼 재판을 받고 있는 CJ 사외이사로 재선임됐고,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특혜 대출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NH농협금융지주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그런 법이 있는지 몰랐다”고 하지만 군색한 변명이다. 설혹 그들 해명대로 법을 몰랐다면 수십 년 동안 법을 집행한 법률전문가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보다는 장관, 총장까지 지내고 변호사로 고액 보수를 받으면서도 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눈총을 피하기 위해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변호사법에 겸직 허가 규정을 둔 것은 검찰 재직 중 수사한 기업에 취업하는 이익 충돌을 막기 위한 취지다. 기업이 검찰 고위간부 출신을 선임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라도 안다. 그들의 인맥을 활용해 검찰에 직ㆍ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고려에서다. 이런 의도로 사외이사를 맡은 이들이 경영진과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라는 사외이사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도 어렵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지난 2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법조인 출신 사외이사로 근무한 116명이 총 2,076회의 이사회에 참석했는데 반대 의견을 밝힌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법률적 전문성을 활용해 보다 엄격하게 경영진을 감시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잘못된 결정을 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울변호사회가 불법 사외이사 전수조사 방침을 밝히자 변호사들의 ‘지각 신청’이 쏟아지고 있다니, 그 동안 겸직허가 없는 사외이사 활동이 관행화했음을 보여준다. 해당 변호사들에 대한 엄중한 징계를 통해 법조계에 만연한 불법 관행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차제에 대기업 사외이사제가 법조계의 전관예우 통로로 이용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검찰 고위간부들의 자성과 의식변화가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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