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기업형 브로커’몸살
개인회생 신청, 부동산 경매 늘며
변호사 법무사 명의 버젓이 도용
2013년 이후 매년 2000명 이상 기소
경제적 약자에 고리대출 주선
채무 회피자엔 소득확인서 위조
대법, 체크리스트 제도 확대 검토
법무부는 변호사 중개제도 추진
변호사가 아니면서 1만900여건의 법률사무를 처리하고 166억원의 수익을 올린 최모씨는 검찰 수사 역사상 최대의 불법 법조브로커로 꼽힌다. 그는 지난해 중반까지 자신이 관리하는 전국 사무실의 브로커 10여명을 매주 대전으로 불러 업무 회의를 열었다. 한 주 동안 개인회생 사건 수임 성과, 광고 블로그 접속자 수 등 영업 현황을 공유하고, 실적이 낮은 지역책임자를 독촉하거나, 건의사항을 취합해 광고전략을 수정하는 논의를 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인천지검에 의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계속되는 단속에도 쉽사리 줄지 않는 불법 브로커들로 법조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유력 법조인들과 친분을 내세워 사건을 알선하고 돈을 받는 1세대 브로커에서, 개인회생 및 경매 관련 법률서비스 영역에서 기업형으로 활동하는 브로커로 진화하고 있다.
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기소한 법조브로커는 2006년 1,147명에서 2015년 2,132명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2008년 1,368명에서 2009년 2,097명으로 급격히 증가한 이후 잠시 하락했다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매년 2,000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변호사 또는 법무사 자격 등을 소지하지 않고 사건 처리에 개입하거나 개인회생 및 경매 업무 등을 대리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개인회생 신청 및 부동산 경매 건수가 급격히 증가한데다 변호사 시장이 포화하면서 법조 브로커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정한 소득은 있지만 채무가 많아 갚기가 어려운 사람에 대해 3~5년간 빚의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는 탕감해 주는 개인회생 제도는 2006년 5만6,000여건에서 2014년 11만건을 넘어섰다. 검찰에 기소된 경매 브로커 숫자도 역시 2006년 68명에서 2013년 1,025명으로 폭증했고 지난해에도 612명을 기록했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는 “개인회생이나 경매 업무가 다른 법률서비스에 비해 단순해 브로커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반면 건당 수수료는 상대적으로 낮아 변호사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고전적 법조 브로커는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서 사건을 알선해 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변호사들에게 일정 대가를 주고 명의만 빌린 뒤 직접 사건을 처리하는 브로커들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기업형으로 커졌다. 김한규 서울변회 회장은 “아예 법조 브로커들이 1, 2년차 변호사들에게 월급을 주고 명의만 빌려 사건을 도맡는 경우도 있다”며 “사건 숫자는 한정돼 있는데 변호사 수가 늘면서 브로커들이 오히려 갑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무자격 브로커들이 사건을 처리하다 보니 온갖 불법과 편법이 횡행한다. 변철형 서울서부지검 부장은 “자력으로 개인회생에 필요한 변제금을 마련할 수 없는 이들에게 불법 고리 대출을 주선하는가 하면 갚을 능력이 있으면서도 빚을 회피하려는 이들에게는 소득확인서를 위조해 법원 사무를 처리해 주는 등 기업화된 브로커들의 폐해가 극심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유력 법조인과 친분을 내세우며 개입하는 고전적인 브로커에 개인회생, 경매 사건에 개입하면서 서류조작까지 남발하는 브로커들까지 가세한 상황”이라며 “의뢰인 입장에서는 병원에 가서 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처방과 진료를 받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법조 브로커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은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동에서 소위 ‘연구소’를 차려 교육생들에게 개인회생 업무 처리 방법 등을 알려준 A씨를 기소했다. A씨는 자신이 계약을 맺은 변호사나 법무사의 명의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생들에게 연결시켜 주고 4억3,000만원의 수익을 올린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A씨가 500여명의 법조 브로커를 양성한 것으로 파악했다.
법조계는 적극적으로 불법 브로커 근절에 나섰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불법 브로커 개입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재판부에 회람토록 한 결과 브로커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변호사 등 30명을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의뢰하고 28명에 대해서는 대한변호사협회 등에 징계를 요청했다. 대법원은 전국 법원으로 체크리스트 제도의 확대 실시를 검토 중이다. 김수남 검찰총장 역시 취임 직후부터 공식 석상에서 법조 브로커 근절을 강조하고 있어 검찰의 단속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법무부는 변호사법 개정 등 입법 형태로 구조적인 대안 마련에 나선다. 이달 말 관련 태스크포스(TF) 3차 회의를 열고 개정안 초안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TF는 허가 받은 기관을 통해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시키는 변호사중개제도 도입 등을 검토 중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20대 총선 직후 법무부가 구체적인 입법안을 만들어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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