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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2.0]환경ㆍ문화 등 기여 분야 커지는데… 경직된 인증절차가 ‘발목’

입력
2017.11.30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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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닌 해외 활동 이유로

공정무역하는 아름다운커피

사회적기업 신청 퇴짜 맞기도

10년새 인증기업 30배 늘었지만

기준 복잡해 중도 포기도 허다

등록제로 전환해 외연 넓히고

민간 주도로 제2도약 모색해야

서울 성동구 서울숲 진입로에 100여개의 컨테이너를 활용해 사회적기업과 청년창업가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언더스탠드에비뉴 전경. 류효진기자
서울 성동구 서울숲 진입로에 100여개의 컨테이너를 활용해 사회적기업과 청년창업가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언더스탠드에비뉴 전경. 류효진기자

아름다운커피는 네팔 등 저개발국 커피 생산자에게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며 안정적인 생활 기반을 갖추도록 돕는, 공정무역을 지향한다. 2014년 아름다운가게에서 독립한 아름다운커피는 그해 정부의 사회적기업 인증을 신청했다가 뜻밖의 퇴짜를 맞고 말았다. 그간의 성과와 주변의 평가가 좋았기에 당연히 통과될 줄 알았는데 사회적 기여활동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증 업무를 대행했던 기관은 서둘러 국내 소외계층을 위한 활동과 성과를 사업 내역에 집어넣으라 권고했고, 옥신각신하던 아름다운커피는 결국 국내 지원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는 안을 제출해 예비 사회적기업에 지정될 수 있었다.

아름다운커피의 이혜란 홍보마케팅팀장은 “저개발국가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한 공정무역이 가치 있는 사회적 활동임이 분명한데 우리 사회적기업 인증 범주엔 포함되지 않았다”며 “내년엔 예비를 떼고 더 절차가 복잡한 본 사회적기업 인증을 신청할 계획인데 과연 통과될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을 정부가 인허가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으로 도입된 고용노동부의 인증 제도를 통해 운영ㆍ지원된다. 정부 주도의 사회적기업 인증제는 초기 사회적기업의 확장에 큰 역할을 해왔다. 올해 11월 기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 수는 1,856개로 첫해인 2007년 55개 기업보다 30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는 동안 인증제는 ‘확장’보다 ‘통제’가 우선되며 효용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10년의 사회적기업 육성정책이 국내 사회적기업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주변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혁신에 대한 대응엔 실패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비 사회적기업을 거쳐 이번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신청한 김현숙 맘이랜서 대표도 아름다운커피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맘이랜서는 경력단절여성에게 정보기술을 교육하고 취업을 돕는 곳이다. 사회적 이슈인 경력단절 여성을 돕기 위해 만든 회사인데 현 사회적기업 인증 요건상 보편적 기준의 경력단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인증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고민이다.

김 대표는 “사회적기업을 다루는 곳이 고용노동부이다 보니 부처 목적에 충실한 취약계층 일자리 중심으로만 인증을 해주고 있다”며 “환경 문화 등 청년 사회적기업의 활동 지평이 무한히 넓어지고 있는데 우리의 인증 기준은 매우 낡고 편협하다”고 꼬집었다.

아름다운커피의 이 팀장도 “사회적기업이 존재하는 이유가 국내 취약계층 일자리만을 위한 게 아닐 텐데 공정무역, 계층갈등 해소 등 폭넓게 다뤄져야 할 사회적 이슈들을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현행 사회적기업육성법 하의 인증제도는 사회적 목적 실현 여부, 영업활동 여부 등 7가지의 구체적인 세부기준들을 충족시키면서 행정기관의 심사까지 통과해야 한다. 멋진 꿈을 기대한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이 복잡하고 어려운 인증 절차를 밟다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허다하다. 인증 절차 자체가 사회적기업 진입의 장벽이 되고 만 것이다.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는 “사회적기업 인증제도가 갖는 제도적 한계와 경직성 개선 필요성은 정부나 업계가 모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증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업계에서는 ‘등록제’로 전환을 주장한다. 사회적기업의 핵심요건을 갖춘 조직 누구나 사회적기업 이름을 사용하며 활동하는 것이다. 다만 지원제도를 노리고 악용할 소지가 있으니 지원정책 수혜자가 될 때는 별도의 심사과정을 통해 평가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회적기업 정체성을 인정해 별도의 법인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현행 사회적기업육성법 안에 가칭 ‘사회적목적 회사’라는 새로운 법인격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것. 사회적기업은 영리기업과 비영리단체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보니 여러 부분에서 기존 제도와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특화된 금융지원도 절실하다. 사회적기업의 경우 기술과 자산 기반으로 기업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현 금융시스템으론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 변 대표는 “사회적기업의 법인격이 생기고 이에 맞는 별도의 금융지원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기업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여행부문 1호 사회적기업인 트래블러스맵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회사를 운영한 지 올해가 9년 차로 이젠 자리를 잡았지만 제2의 도약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받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0년이 정부 주도의 사회적기업이 자리를 잡은 거라면 앞으로 10년은 민간 주도의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은 사회적기업 수가 7만개에 이르지만 우린 이제 2,800여개에 불과하다. 이제 시작단계인 우리 사회적기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선 제도적 한계가 빨리 해소되고 진입장벽이 낮춰지는 게 시급하다.

변 대표는 “지금도 매년 전국에서 400~500개의 예비 사회적기업이 육성되고 있는데 이들이 인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와 정책 설계만 달라져도 사회적기업 규모가 획기적으로 커지며 자체적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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