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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잔뜩 쌓아두고… 계좌 방치하고… 투자 ABC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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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잔뜩 쌓아두고… 계좌 방치하고… 투자 ABC조차 모른다

입력
2015.07.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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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전문가 1명이 8000억대 운용

단기자산 비중 80%까지 치솟고

이자율 0% 국고계좌에 넣어두기도

정보 공개 통해 방만 운용 감시해야

#. 전력수요관리와 전력연구개발사업에 쓰이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지난해 기준 여유자금의 평균잔액이 8,815억원에 달하는 중형급 기금. 하지만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내부 전문가가 1명뿐인 초미니 조직(전문가 1명, 총괄 1명)을 운영하고 있다. 성과와 위험관리 조직 역시 팀장 1명에 차장 1명뿐이며, 외부 운용기관도 팀장 1명, 애널리스트 2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런 인력구조로는 향후 해외ㆍ대체 투자가 힘들 것”이라며 인력충원을 요구했다.

10년 전 약 191조원이던 국내 기금들의 여유자금 규모는 해마다 급증해 지난해 524조원에 육박했다. 전체 자금의 절반 이상(2013년 기준 53.1%)이 이른바 ‘재테크 여윳돈’인 셈이지만 막대한 규모에 비해 관리실태는 여전히 허술한 곳이 많다. 갈수록 열악해지는 금융시장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30일 매년 전체 기금의 3분의 1 이상을 조사ㆍ평가하는 정부의 ‘2014회계연도 기금운용평가보고서(자산운용 부문)’에 따르면, 지난해 평가 대상이 된 37개 기금의 평가점수(69.4점)는 2013년(70.6점)보다 하락했다. 평가단은 “전년보다 대형기금에 대한 평가기준을 엄격히 적용한 결과”라고 밝혔지만 자산운용체계 개선 분야(2013년 86.7점→2014년 82.5점)와 자산운용수익률 분야(50.2→49.7점) 모두 평가점수가 뒷걸음쳤다.

보고서는 아직도 국내 기금들의 자산운용 실태가 열악한 수준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6단계 평가등급 중 하위 2등급(미흡, 아주미흡)을 받은 고용보험기금, 산업재해보상보험및예방기금(이하 산재기금), 국민주택기금이다.

각각 여유자금 규모가 6조6,787억원과 9조5,787억원에 달하는 고용보험기금과 산재기금은 고용노동부 내 자산운용팀이 관리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자산운용 전담인력은 3명, 위험관리 인력은 2명에 불과하다. 일부 대체투자를 시도하고는 있지만 담당 사무관이 단기 연수를 거쳐 관련자격증을 취득한 것 외에는 전문인력도 없는 상태다.

보고서는 두 기금 모두 작년 최하위 수준(각 1.77%)의 수익률을 거둔 배경으로 인력부족 외에도 구조적 문제들을 지적했다. 적정 유동성 규모를 과다 책정해 지나치게 현금보유 비중을 늘렸고, 외부위탁 금융사의 선정ㆍ평가 과정이 규정상으로만 존재할 뿐 전혀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1조4,624억원의 거대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주택기금 역시 투자의 기본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내 주택기금과가 운용 주체지만 소수의 조직원 대부분이 관련 경력이 짧은 비전문가인데다 같은 과 안에 자산운용계와 위험성과계가 공존해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지관리기금은 과도한 단기자산 배분을 지적 받았다. 적정 유동성 규모 추정 오류로 2013년 30% 수준이던 전체 여유자금 내 단기자산 비중이 지난해엔 80%로 급증했다. 통상 투자기간이 1년 이내로 설정되는 단기자산은 중장기자산에 비해 수익률 높은 상품에 투자하기 어렵다.

이처럼 기금들이 매년 허술한 운영을 되풀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굳이 공 들여 수익률을 높일 동기가 적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기금 여유자금 운용실태 분석’ 보고서에서 국민건강증진기금, 석면피해구제기금, 응급의료기금, 문화재보호기금 등의 무책임한 단기자금 운용실태를 꼬집었다. 단기자금 중 즉각 사용할 필요가 있는 현금성자산이라도 보통 국고계좌에 들어오는 즉시 MMF나 보통예금 등으로 이체해 소액의 이자라도 추구하는데 이들 기금은 이자율이 0%인 국고계좌에 그대로 방치해 최소한의 수익마저 포기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금의 수익률 제고와 운영체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먼저 정부가 운영하는 연기금투자풀 확대를 제도화할 필요성이다. 연기금투자풀은 전담인력이 부족한 중소기금들의 자금을 십시일반 모아 공동 운용하는 제도. 하지만 예탁 여부를 기금의 자체 판단에 맡기고 있어 예탁 비율이 여전히 미미한(작년 전체 기금 여유자금의 2.7%) 실정이다. 또 중소기금들의 관심을 높이려면 ‘초라한’ 수준(2013년 2.54%)인 연기금투자풀의 수익률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노력도 절실하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자산 1조원 이상 기금에만 자산운용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어 중소기금이 기금운용을 소홀히 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도영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자산운용위원회 설치 기준을 완화하고 기금 자산 규모별로 관리기준도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도 필수적인 개혁 과제다. 그간 기금 자산운용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돼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기금들의 방만 운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도 이에 공감하고 지난 3월 ‘통합재정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한 전면 정보 공개’를 공언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시행되지 않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캐나다 퀘벡주 연기금이 론스타에 투자한 사실도 자체 연차보고서에 기재돼 있어 알 수 있었다”며 “국회가 법률을 제ㆍ개정해 기금의 투자 내역ㆍ성과는 물론,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 보유주식의 의결권 행사 등까지 공개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종=김용식기자 jawohl@hankookilbo.com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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