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22일 결국 채권단에 자율협약(채권은행공동관리)을 신청했다. 현대상선은 이미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따라서 해운ㆍ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ㆍ건설 등 한계 주요업종에 대한 전반적 구조조정이 양대 국적 해운사를 시작으로 본격화하게 됐다. 관건은 총선 직후 야당의 적극적 의지로 구체화한 ‘여야정 협의체’의 역할이다. 고통분담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의 특성 상 정치권이 합리적 원칙과 방향에 신속히 합의하고 뒷받침 하면 순항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칫 ‘배가 산으로 갈’ 우려가 크다.
자율협약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이전에 채권단이 기업의 자구안(自救案) 이행을 조건으로 유동성 지원을 포함한 포괄적 협약을 맺어 경영정상화를 시도하는 구조조정 방식이다. 한진그룹은 자율협약 신청 조건으로 조양호 회장의 한진해운 경영권을 포기했다. 5월초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받아들이면 한진해운의 경영권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넘어간다. 현대상선도 마찬가지다. 용선료 협상 결과에 따라 법정관리로 가든 안 가든, 경영권은 이미 채권단에 넘어간 상태여서 결국 양대 해운사의 운명은 국책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달렸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구조조정 방안으로 두 개 회사를 하나로 합치는 인수ㆍ합병(M&A)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용선비 경쟁력 저하, 노선 중첩 등 경영난의 원인을 감안하면 자연스런 구상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최근 “국적해운사가 2곳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고 밝혀 합병을 시사했다. 그 경우, 주주와 채권단, 최소 3조원이 넘는 두 회사 사채 투자자 등의 손실은 경제논리와 채권단 이해에 따라 비교적 신속한 정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사회문제를 일으킬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이다.
여야는 구조조정의 시급성은 인정하면서도 인력구조조정 문제에는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총선에선 여당 대표까지 “인력구조조정을 막겠다”는 취지의 공약을 내놓았을 정도다. 더민주당은 벌써 “대량실업 대책 없는 구조조정은 의미가 없다”며 향후 여야정 협의에서 실업대책에 집중할 뜻을 내비쳤다. 정치권이 실업문제에 주목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지나치면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만 빚는다. 1997년 외환위기 전 기아차 처리와 2011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희망퇴직 당시 미온적 태도로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은 전례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여야정 협의는 구조조정 원칙과 합의를 신속히 밝히고, 정치논리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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