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재활 난민 될 뻔한 축구선수 신영록, 다시 일어나다

알림

재활 난민 될 뻔한 축구선수 신영록, 다시 일어나다

입력
2017.06.21 04:40
0 0

경기 중 쓰러진지 6년 지나

건보 의료비 지원 삭감으로

이 병원 저 병원 떠돌 뻔

신영록(왼쪽)이 지난 16일 서울 강서 솔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특수 재활 장비 ‘바이오덱스’에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 두 다리로 버텼다. 오른쪽은 나영무 솔병원 원장. 신상순 선임기자
신영록(왼쪽)이 지난 16일 서울 강서 솔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특수 재활 장비 ‘바이오덱스’에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 두 다리로 버텼다. 오른쪽은 나영무 솔병원 원장. 신상순 선임기자

“평생 운동만 한 우리 아들 그림 실력이 이 정도인 줄 이제 알았네요.”

신영록(30) 어머니 전은수씨가 엷게 미소 지었다. 눈가에는 살짝 눈물도 고였다. 재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인지 치료 과정에서 아들이 그린 사과나무와 손가락 그림을 보면서다.

신영록은 6년 전 어버이날인 2011년 5월 8일 프로축구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소생 가능성 2%라는 희박한 확률을 뚫고 그는 46일 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다. 사고 후 1년간 입원을 거쳐 2012년 가을부터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해 왔다. 하지만 병원은 재활 치료 횟수를 1주일에 네 번에서 세 번, 두 번으로 점차 줄이더니 급기야 지난 4월 초 더 이상 (치료가)안 된다고 통보했다.

완치된 환자가 장기 입원해 보험 재정을 낭비하는 걸 막기 위한 건강보험 수가 체계가 재활치료 분야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입원 후 3개월이 지나면 병원 측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할 수 있는 의료비가 40%나 삭감된다. 병원들은 만성 재활 환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2~3개월씩 병원을 옮겨 다니는 이른바 ‘재활 난민’이 양산되고 있다. 신영록은 축구 스타 출신이라 다른 환자에 비하면 그나마 큰 혜택을 받은 셈이지만 하루 아침에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져 발을 동동 굴렀다. 신영록의 안타까운 사연이 본보 보도(4월 14일자 27면)로 알려진 뒤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장인 윤영설 연세대의료원 미래전략실장과 부위원장인 나영무 강서 솔병원 대표원장이 발 벗고 나섰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신영록은 지난달부터 매주 월·목요일은 연세대의료원 재활병원, 금요일은 솔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솔병원의 스포츠 재활 치료는 무료다. 신영록의 아버지 신덕현씨는 “환경이 바뀐 게 동기부여가 됐는지 영록이가 요즘 훨씬 적극적이다”고 기뻐했다.

신영록이 연세대의료원 재활병원에서 인지 치료를 받으며 그린 사과나무 그림. 신영록 어머니 전은수씨 제공
신영록이 연세대의료원 재활병원에서 인지 치료를 받으며 그린 사과나무 그림. 신영록 어머니 전은수씨 제공
신영록이 그린 자신의 손가락 그림. 신영록 어머니 전은수씨 제공
신영록이 그린 자신의 손가락 그림. 신영록 어머니 전은수씨 제공

연세대 의료원·솔병원서 도움

“꼭 일어서겠다” 의지 되찾아

16일 솔병원에서 만난 신영록은 씩씩해 보였다.

“자, 영록아 겁내지 말고 천천히. 심호흡하고.” 나 원장의 독려를 받은 신영록이 몸의 근력과 균형을 잡아 주는 특수 재활 장비 ‘바이오덱스’에 조심스레 올랐다. 두 다리로 기계 위에 선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꿋꿋하게 정면을 보고 버텼다.

“잘했어. 영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나 원장의 칭찬을 받은 신영록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자리를 옮겨 스스로의 힘으로 천천히 사이클 페달을 밟았다. 아버지 신씨는 “발과 페달을 끈으로 묶지 않고 혼자 돌리는 건 처음 봤다”고 놀라워했다.

약 두 달 전만 해도 신영록은 자신이 더 이상 치료를 받기 어렵다는 걸 알고 시무룩했다고 한다. 어머니 전씨는 “내가 전화로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보는 모습을 보더니 ‘엄마, 나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라며 걱정하더라”고 털어놨다. 아버지 신씨는 “5년이나 병원에서 재활했으니 얼마나 지겨웠겠느냐. 처음에는 병원 안 가도 되니 어린 아이처럼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걸 알고 영록이도 답답해했다”고 말했다.

신영록은 요즘 다시 의욕을 찾았다. 나 원장은 “재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한 의지와 긍정적인 생각, 불안해하지 않는 마음이다. 신영록 표정이 처음보다 훨씬 밝아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1996년 축구협회 의무분과위 멤버로 축구와 첫 인연을 맺은 나 원장은 과거 신영록이 ‘들소’처럼 그라운드를 누비던 모습을 기억했다. 나 원장은 “신영록은 예전부터 워낙 성실했다. 사실 일반인이었다면 처음 사고 후 지금처럼 회복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신영록이 앞으로 1%라도 더 좋아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밝은 표정으로 사이클 페달을 돌리는 신영록. 신상순 선임기자
밝은 표정으로 사이클 페달을 돌리는 신영록. 신상순 선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