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또다시 기로에 섰다. 이번엔 남아서 새누리당의 리빌딩을 꾀하느냐, 아니면 뛰쳐나가서 보수의 새 깃발을 드느냐의 선택이다. 지난해 여름 국회법 개정안 파문과 관련해 5개월 만에 원내대표직에서 중도하차 할 때, 그리고 지난 4월 총선공천 파동 당시 탈당과 무소속 출마 결정에 이어 세 번째 맞닥뜨린 결정의 순간이다. 세 번 모두 친박계의 강한 압박 속에 유 의원의 버티기성 장고가 이어진 게 공통된 장면이다.
▦ 지난해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개정안 통과를 주도한 유 원내대표에게 “배신의 정치” 낙인을 찍었다. 즉각 친박계 의원들이 들고 일어나 그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압박했다. 그는 계속 버티다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사퇴권고 결정을 내리자 13일 만에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사퇴의 변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 비박계 학살이 벌어진 4ㆍ13 총선 공천 당시에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토끼몰이식 공천배제 공세에 직면했다. 그와 가까운 의원들을 먼저 탈락시킨 뒤 “스스로 결단하라”며 후보등록 전날까지도 공천을 결정짓지 않았다. 결국 유 의원은 10여일간 버티다 무소속 출마 결정 시한 1시간을 남기고 “오래 정든 집을 잠시 떠나 있으려 한다”며 탈당했다. 물론 친박 공천 심판 분위기 속에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우여곡절 끝에 복당해 보수의 새로운 아이콘으로서 차기 대선주자급 위상을 확보하는 데도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후 한지붕 아래 친박계와 비박계의 동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도 유 의원은 새누리당의 리빌딩에 더 집착한다. 친박계가 한사코 줄 생각이 없다는데도 ‘전권을 가진 비대위원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것도 그래서다. 유일한 보수정당으로서의 적통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겠지만 지역구(대구 동을)를 비롯한 TK지역 민심에 기대려는 안이함도 느껴진다. 상황이 빤한데도 자꾸 결단을 미루는 모습이 거듭되자 실망했다며 돌아서는 사람들도 하나 둘 늘고 있다. 어쨌든 유 의원의 세 번째 장고 끝 결정이 임박했다고 하니 포스트 탄핵정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이계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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