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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20> 병마는 신이 주신 선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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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의 인생도 야구도 끝은 몰라요] <20> 병마는 신이 주신 선물이었을까

입력
2011.02.2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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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이때 하나님은 반드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아닐 것이다. 절대자에 대한 연약한 인간의 간절한 호소일 것이다. 내가 처음 하나님을 찾은 것은 언제였을까?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려 했을 때였을까? 부모님이 이혼했을 때 나는 겨우 초등학교 5학년생이었다. 그 나이 때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 특히 어른들은 모두 전능하다.

내가 처음 하나님을 찾은 것은 헌병대 영창에 갇혔던 때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이 상황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때 나를 구해 준 손길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군에서 높은 계급이셨기에 나를 영창에서 꺼내 주셨다.

그 다음에는 언제 하나님을 찾았을까? 헌병대 사건 이후로 하나님을 찾은 것은 병원에서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였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나는 갑자기 수술대에 눕고 말았고, '살아서 이 방을 나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2002년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방송 녹화 도중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병원에 갔는데 심근경색과 위 종양 판정을 받았다. 나는 3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고, 생사의 기로에 섰다. 의사들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무의식 속에서도 울부짖으며 기도했고,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나를 도와줬다. 결국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내 발로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소원대로 사랑하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비록 몸이 불편해서 앉은 채 하객을 맞아야 했지만 행복했다. 결혼식을 연기하려고까지 했던 딸은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나도 그런 딸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아내의 사랑 또한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전에도 내겐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였지만, 병마와 씨름하게 된 이후로는 아내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크게 느꼈다. 수술 3개월 후 나는 다시 야구장 마이크 앞에 앉았다. 해설자를 그만둬야 하지는 않을까 고민했던 나로서는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었다. 20여 년 전 처음 마이크 앞에 앉았을 때만큼 설레고 긴장됐다.

심장 수술을 받은 뒤 3년 후에는 위 종양 수술을 받았다. 심장 수술 때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몇 분 전에만 힘들었다. 하지만 종양 수술은 달랐다.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간 피가 말랐다. '혹시 암이면 어떡하나?' 잠도 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다시 하나님을 찾았다. '암에 걸려야 한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 무사히 지나간다면 남은 생은 덤으로 알고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매일 그런 기도를 했다. 나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지만,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저 내 생사를 쥐고 있는 어떤 절대자에 대한 간절한 외침이었다.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다. 평소에는 자신이 운명의 주체인 양 행동하지만 X-레이 사진 한 장 앞에 모든 게 바뀌고 만다. 나는 내 운명에 대해 털끝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알 수는 없었다. 원래는 암 덩어리였는데 내 기도 때문에 악성이 양성으로 바뀌었는지. 여하튼 나는 그렇게 믿게 됐고 이후로 많은 게 변했다. 하나님이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내 기도가 통한 건지 아닌 건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내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두 번의 입원 경험을 통해 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내 인생의 의미만 생각하고 내 가족의 행복만 생각할 때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어렸을 때야 부모님의 이혼으로 꽤 힘들었지만, 솔직히 나는 30대 중반 이후로는 인생이 제법 잘 풀렸다. 그만하면 야구 해설자로 인기도 얻었고 돈도 어느 정도 벌었다. 인간관계에도 큰 부족함이 없었다. 분명히 실패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인생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보게 됐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통해 개인의 행복 이상의 더 큰 가치관들을 알게 됐다. 이제 나는 사랑이라는 게 연인이나 가족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고, 나눠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안다. 내가 무슨 경지에 올랐다는 게 아니라 이전보다는 조금 더 겸손해졌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내게 닥친 병마는 오히려 선물이었던 것 같다. 나를 변화시켜 더 높고 깊은 것들을 보게 한,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 이제 나는 그 선물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고 또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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