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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의 그 이름, '힙합 여왕' 윤미래

입력
2016.08.0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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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힙합이 국내에 상륙한 지 20여 년 만에 주류 음악으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대중화 과정에서 쌓아온 노력과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는 MC(래퍼)들도 생겨나고 있다.

자이언티, 지코를 사랑하지만 주석, 피타입을 모르는 새내기 힙합팬을 위해 준비했다. 여기, 새로운 라임(운율)과 플로우(흐름)를 개발하며 힙합의 발전을 끌어간 MC들을 소개한다.

2007년 가수 윤미래가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가수 윤미래가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 5대 여성 래퍼는? 윤미래, T, 타샤, 제머나이, 조단 엄마.'

오래 전부터 온라인 상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떠돌고 있다. 언급한 래퍼는 모두 동일 인물. 가수 윤미래다. 힙합계에서 윤미래는 이미 대체 불가능한 인재다. 여성 MC 중 흑인 음악의 감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발성이 뛰어난 가수로 평가 받는다. 보컬도 여느 R&B 가수에 뒤지지 않는다.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활동하지만, 힙합가수가 어설프게 보컬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힐난도 없었다.

평판이 이렇다 보니 윤미래 스스로 여유가 넘친다. 지난 7일 방영된 SBS '일요일이 좋다-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한 그는 "힙합이 디스(Disㆍ음악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힙합은 사랑"이라며 낭만적인 소신을 밝혔다. '평화'를 추구하는 '힙합 대모'의 감수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정녕 윤미래를 능가할 여성 MC는 나오지 않을 것인가. 시계를 1990년대로 돌려봤다.

1997년 데뷔한 힙합 그룹 업타운. 왼쪽부터 이현수, 정연준, 김상욱, 윤미래. 활동할 당시 윤미래의 나이는 15세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7년 데뷔한 힙합 그룹 업타운. 왼쪽부터 이현수, 정연준, 김상욱, 윤미래. 활동할 당시 윤미래의 나이는 15세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 발라드와 힙합 넘나들어…음악적 스펙트럼의 확장

윤미래는 미국 텍사스 주에서 주한 미군 출신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DJ 경력의 아버지 영향으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친구를 따라 오디션에 갔다가 한 프로듀서의 눈에 띄어 1997년 혼성그룹 업타운의 멤버 타샤(Tasha)로 데뷔했다.

여성 래퍼가 드물었던 가요계에서 윤미래의 등장은 파격이었다. 특히 그가 보컬까지 소화 가능하다는 것이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 독특한 포지션과 실력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 업타운의 멤버들이 대마초 흡연으로 국외 추방을 당하면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윤미래 역시 이 사건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후 그는 T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 1집을 발표했다. 1집은 업타운 때 추구했던 힙합 감성을 빼고 대중적인 발라드로 채웠다. '시간이 흐른 뒤', '행복한 나를' 등 R&B 발라드로 인기를 다진 윤미래는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을 재개했다. 2002년 발매한 1.5집 '제머나이' (Gemini)는 당시 명성에 비해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수록곡 '메모리즈' (Memories)가 꾸준히 사랑 받으면서 명반으로 남았다.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는 윤미래의 남편이자 그의 음악적 동반자이기도 하다. 윤미래는 2000년 타이거 JK가 설립한 ‘크루 무브먼트’의 창립멤버로 영입된 후 지금까지 그와 행보를 같이 해오고 있다. 2006년 기획사 정글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할 때도, 2013년 독자 레이블 '필굿뮤직'을 설립할 때도 두 사람은 함께였다.

2007년 타이거 JK와 결혼한 윤미래는 다음해 아들 서조단을 얻었다. 아들을 양육하면서 공식적인 방송 활동은 현저히 줄었지만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2012년 빌보트 차트 1위를 기록한 해외그룹 파 이스트 무브먼트(Far East Movement)와의 작업을 계기로 타이거 JK와 함께 미국에 진출했다. 다음해 타이거JK, 가수 비지(Bizzy)와 함께 3인조 그룹 MFBTY를 결성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2011년 싱글 앨범 '겟 잇 인'(Get It In)에서 파워풀한 래핑으로 힙합 팬의 갈증을 채우기도 했으나, 최근 2~3년간은 발라드 가수로 두각을 드러냈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 KBS '태양의 후예' 등에 수록된 드라마 OST가 인기를 끌었다.

2007년 가수 윤미래가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7년 가수 윤미래가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 힙합계 '세대 교체', 윤미래는 살아남을까

윤미래가 "힙합은 사랑"이라 말한 것이 꼭 방송용 농담만은 아닌 듯하다. 실제 윤미래표 힙합에선 인신공격성 디스곡이나 자극적인 가사를 찾기 힘들다. 솔로 데뷔 후엔 어린 시절 흑인 혼혈아로 차별 당했던 과거 등 자전적인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여기에 보컬 역량을 살리기 위해 멜로디 라인이 강조된 곡을 선보여 독자적인 감성 힙합의 영역을 구축했다.

최근 힙합계에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윤미래의 실력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박자 위주인 그의 래핑이 엇박자를 잘 타고 화려한 스킬을 구사하는 현재 힙합 트렌드와 맞지 않는다는 것. 힙합 음악의 주 소비층인 1020세대가 공감할 만한 가사를 쓰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Mnet '언프리티 랩스타' 방영으로 트루디, 치타, 제시 등 차기 여성 MC가 나오고 있는 것도 윤미래의 타이틀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힙합의 원초적 감성을 윤미래만큼 잘 살리는 여성 MC가 아직까지 없는 것도 사실이다.

● 업타운 1집 '다시 만나줘'

● 1집 '시간이 흐른 뒤'

● 1.5집 'Memories'

● 3집 '검은 행복'

● 싱글 앨범 'Get It In'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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