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정현(22)씨는 학기 초에 영어로 진행되는 전공 수업교재를 구하느라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교수가 제시한 교재는 오래 전에 절판돼 국내 온라인 및 오프라인 서점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원서였다. 심지어 원서 전문 온라인 쇼핑몰에 연락해 봤으나 “책이 절판돼 재고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결국 김씨는 미국 인터넷서점 아마존을 통해 책을 구입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책의 판수가 문제였다. 교수가 말한 판수 이후에 다섯 번 더 개정판이 나와서 동일한 판본은 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 김씨는 결국 구할 수 없는 교재 때문에 해당 수업의 수강을 철회했다.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최유정(21)씨도 같은 이유로 교수에게 절판된 교재를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교수는 “이 책만한 교재가 없고 이미 강의 준비가 끝나서 다시 수정할 수 없으니 중고책을 구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라”며 교재 변경을 거부했다. 최씨는 “교수가 수업 준비를 하기 전에 교재의 절판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수업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고 교재 변경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늘어난 부담, 줄어든 교육의 질
대학생들이 구할 수 없는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교수들 가운데 교재의 절판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구할 수 없는 교재로 수업을 강행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교재를 구하지 못한 학생들은 교수가 사이버 자료실에 올려준 파워포인트 자료나 요약된 참고자료만으로 수업을 할 수 밖에 없어서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이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대학생 성윤지(22)씨는 “파워포인트 자료는 교재를 요약한 수준이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시험 공부를 할 때도 내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단순히 외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절판 교재를 사용하거나 구하기 힘든 교재로 수업하는 과목의 경우 학생들 사이에 교재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혹시 전국 어느 서점에 재고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서점들을 돌아다닌다. 특히 절판된 책의 경우 중고책마저도 구하기 힘들어 ‘보물찾기’로 통한다. 설령 중고책을 구해도 가격이 정가의 2,3배에 이를 정도로 비싸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절판된 교재 때문에 수강신청을 철회한 대학생 이영민(22)씨는 “4,5일간 교재를 구하기 위해 전국 서점을 훑다 보니 완전히 지쳤다”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실효성 없는 도서관, 출판사 탓만 하는 교수
교수들은 절판 교재의 경우 대학 내 도서관을 이용하라고 권하지만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들이 교재의 대출 기간을 2주~1개월로 정해 놓아 한 학기 내내 수업을 위해 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도서관에 비치된 교재들은 수량이 부족해 아예 대출 신청 단계에서 막히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대학 도서관들은 지정 도서제를 운영하고 있으나 마찬가지로 효용성이 떨어진다. 지정 도서제는 교수가 수업 교재로 지정한 책을 많은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서가에 상시 비치하고 대출을 하지 못하게 한 제도다. 대학생 최지수(20)씨는 “지정도서는 도서관 운영시간에만 이용할 수 있고 많아야 3,4권에 불과해 제대로 보기 힘들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수들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점이다. 일부 교수는 절판 교재를재출간 하지 않는 출판사를 탓하며 원본을 복사해 제본하라고 권한다. 사실상 교수가 저작권법 위반을 요구하는 셈이다.
오히려 인쇄소들이 저작권법 위반 시 처벌을 우려해 제본을 거부한다. 저작권법 제 136조에 따르면 복제 등으로 저작권을 침해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서울의 한 여대에 재학중인 정 모(23)씨는 “제본을 하려고 몇 군데 인쇄업체를 돌아다녔으나 거절 당했다”며 “교수가 불법을 조장해도 되느냐”고 반문했다.
교수의 배려가 유일한 해법
학생들은 절판 교재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수가 교재를 신중하게 선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 서적인 대학 교재는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출판사들이 재출간을 꺼린다.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교수가 다른 대체재를 제시할 수 없는 이상 구하기 힘든 교재를 강요하면 안 된다”며 “교수가 수익성 때문에 출판을 하지 않는 출판사를 탓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 출판사와 연계해 책을 다시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한설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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