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테러리스트의 지뢰가 희망까지 뺏진 못했죠

알림

테러리스트의 지뢰가 희망까지 뺏진 못했죠

입력
2015.10.05 20:12
0 0

상이군인 100m 출전 펠리파 대위

29세에 페루 정글 진압 작전서 부하 3명과 함께 왼쪽 다리 잃어

수 년간 악몽같은 치료 견디고 재활

"역경 있어도 희망 멈추지 않기를"

카를로스 엔리케 코르도바 펠리파(34·페루)대위가 국군체육부대 육상경기장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경=허경주기자
카를로스 엔리케 코르도바 펠리파(34·페루)대위가 국군체육부대 육상경기장에서 본보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경=허경주기자

“다리를 잃었어도 군인으로서의 삶은 계속 된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었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었습니다.”

5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 육상경기장. 막 경기를 마친 뒤 달리기용 의족을 미처 교체하지 못한 채 인터뷰장에 들어온 카를로스 엔리케 코르도바 펠리파(34) 대위는 “한쪽 다리로 달리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우문(愚問)에 서툴지만 강한 어조의 영어로 이렇게 답했다.

한국과 지구 반대편 페루에서 2015 경북ㆍ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남자 상이군인 100m 부문 출전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 온 펠리파 대위는 이날 상이군인 B(무릎 위 절단 또는 기능장애)등급, C(팔장애)등급 혼합 결승에서 15초50를 기록하며 혼합 6명 중 4위, B등급 중에서는 1위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페루 육군 특수부대 출신인 펠리파 대위는 29세이던 2010년 11월 정글에서 테러리스트 진압 작전을 지휘하던 중 기습을 당했고 테러리스트가 설치해 둔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가 절단됐다. 응급조치로 무릎 아랫부분만 절단됐지만 그를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온 헬리콥터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접근이 늦어졌고 이틀 뒤 구조됐을 때는 이미 무릎 위까지 감염돼 잘라낼 수 밖에 없었다. 남아있는 오른쪽 다리에도 당시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하 3명은 목숨을 잃었다.

펠리파 대위가 의족을 착용한 채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있다. 펠리파 대위 제공
펠리파 대위가 의족을 착용한 채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있다. 펠리파 대위 제공

그는 앞서 열린 경기 때문에 다리가 저릿한지 인터뷰 내내 연신 오른쪽 다리를 만지면서도 “다리는 잃었지만 군인으로서 내 삶은 계속된다”며 “다친 것까지도 훈련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비록 한쪽 다리는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고 전과 마찬가지로 1만2,000 피트 상공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즐기고 육상대회에 출전해 상을 휩쓰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지금은 남아메리카대륙의 유일한 상이군인 100m 육상선수인 그가 처음부터 절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펠리파 대위는 “다리를 잃었을 때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페루 고산지대를 누비며 훈련하던 그에게 몇 년간의 병원 생활은 악몽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부인과 여섯 살 난 아들이었다. 그는 “가족의 믿음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며 “그들은 늘 ‘당신은 할 수 있어’(You can do it)”라고 말하며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게 했다. 가족은 날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펠리파 대위는 “다리를 잃은 뒤 늘 거울을 보며 스스로 주문을 외듯 ‘너는 다시 달려야만 한다. 멈추지 말고 다시 뛰고 스카이다이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2년이 넘게 재활을 위해 노력했고 최근까지도 매일 하루 4~6시간 가량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8월 토론토에서 개최된 파라팬암(장애인)대회 100m에서는 4위를 했고, 페루 국내 장애인 선수권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등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펠리파 대위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한쪽 다리가 없어도 똑같이 달릴 수 있다”며 “다른 사람들에게 ‘역경이 닥쳐도 희망을 멈추지 말고 헤치고 가면 불가능은 없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북 문경 호계면 국군체육부대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육상 남녀 상이군인 B등급 100m 결선에서 선수들이 출발자세를 취하고 있다. 문경=연합뉴스
경북 문경 호계면 국군체육부대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5 경북·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육상 남녀 상이군인 B등급 100m 결선에서 선수들이 출발자세를 취하고 있다. 문경=연합뉴스

한편 한국은 대회 개막 나흘째 유도에서 첫 금메달을 수확했다. 이정민(24ㆍ병장)이 73㎏급 결승전에서 이란의 바히드 바나를 모로돌리기 한판으로 물리치고 한국에 금메달을 선물했다. 남자 60㎏급 동메달 결정전과 66㎏급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황동규(27ㆍ병장)와 한장수(24ㆍ상병)가 나란히 한판으로 승리해 동메달을 추가했다. 유도에서 동메달 2개, 사격에서 동메달 1개를 보탠 한국은 종합 5위로 뛰어올랐다.

문경=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