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요? 약간의 동정심도 있었죠. 하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캔사스시티 로열스가 30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은 2일(한국시간), 미국 현지 팬들 만큼이나 우승을 기뻐한 한국인이 있었다. 바로 캔자스시티의 골수 팬 이성우(39) 씨다.
이씨가 캔자스시티의 매력에 빠진 건 약 20년 전부터다. 영어공부 삼아 시청하던 미군방송 AFKN에서 매일 저녁 6시30분 방영한 CNN과 ESPN의 스포츠 뉴스를 틀어줬고, 이 때 접한 캔자스시티의 아름다운 홈구장 모습과 불꽃 세리머니에 묘한 끌림을 느꼈다. 애정을 갖고 지켜보다 보니 연패가 계속되는 만년 약체에 대한 동정심이 발동했다. 약체의 승리를 바라는 ‘언더독(Underdog) 효과’가 단풍 물들 듯 그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강산이 두 번은 변한다는 세월이지만 이씨의 마음은 변치 않았다. ‘코리안 특급’박찬호부터 피츠버그의 새 희망이 된 강정호까지 수 많은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탄생해도 그에겐 오직 캔자스시티뿐이었다.
동점 만든 9회초, 조심스레 우승 예감
우승 당일 회사에서 틈틈이 인터넷 중계로 경기 소식을 접했다는 그는 “패색 짙던 9회 0-2 열세의 스코어를 2-2 동점으로 만든 순간 ‘일 내겠다’싶었다”고 했다. 그의 느낌 그대로 승부는 12회초에만 5점을 뽑아낸 캔자스시티의 7-2 승리로 끝이 났다.
그토록 고대하던 우승 순간의 감흥을 묻자 “집에서 본 3, 4차전 때와는 달리 흥이 덜했던 건 사실”이라며 “경기 종료 후 많은 이들의 축하메시지를 받고서야 서서히 우승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특히 미국 현지 팬들과의 소통 창구인 트위터에선 ‘멘션 폭탄’이 투하되는 등 공간을 초월한 우승 파티가 벌어지기도 했다. ‘#BringBackSungWoo(이성우를 다시 데려오라)’라는 해시태그도 되살아났다. 지난해 8월 이씨의 캔자시스티 방문 기간 동안 팀이 8승 1패란 믿기 힘든 성적을 거두자‘승리 요정’이란 별명을 얻은 이씨를 월드시리즈 때 다시 초청하자는 캠페인 목적으로 사용된 해시태그지만 이젠 ‘이성우를 다시 불러 우승을 함께 즐기자’는 의미로도 쓰였다.
“나 같은 일반인도 스토리화 하는 게 ML의 힘”
캔자스시티 지역 내에서만큼은 이성우란 이름이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보다도 유명하다. SNS를 통해 현지 팬들과 꾸준히 소통한 그를 지난해 구단이 직접 초청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씨는 “지난해 팔자에도 없는 관심을 받아 어안이 벙벙했다”면서도 “한편으론 이역만리의 괴짜 팬 한 사람까지도 구단의 스토리로 만드는 게 메이저리그의 힘이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스토리가 국내에서도 알려지며 이씨는 ‘성공한 마니아’라 불리기도 했다. 이씨는 “현지 지역언론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이렇게 국내까지 퍼질 줄 전혀 몰랐다”면서 “미디어의 관심이 여전히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를 ‘평범한 월급쟁이’라고 강조한 그는 마지막으로 캔자스시티에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지난 8월 모친상을 당한 무스타커스, 9월과 10월 부친상을 당한 크리스 영, 볼케즈 등 슬픔 속에서도 큰 활약을 펼친 선수들을 지켜보며 팀에 더 큰 애정이 생겼어요. 캔자스시티 팬들이 저를 초대하고 싶은 마음만큼 저도 그들을 또 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기회가 된다면 휴가를 내 함께 팀을 응원해 온 아내, 동생과 다시 한 번 캔자스시티에 방문 할 생각입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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