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몇 번인가는 억울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내가 미국에서 53만 달러(6억8,000만원) 상당의 호화주택을 불법 매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적이 있다. 1996년 3월의 일이다.
내가 15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선언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터진 일이었다. 정치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은 사건으로 그 자초지종을 밝히고 싶다.
내가 미국 뉴저지주의 그 주택을 산 것은 1989년 5월이다. 그때 아들 창원(昌元)이와 딸 미숙(美淑) 현숙(賢淑)이 모두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다행히 창원이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있어 별 문제가 없었지만 딸들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싸구려 월셋방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안쓰러워 구한 집이 문제의 그 주택이었다.
그 집은 뉴저지주 스펜서은행에 근저당이 설정된 집이었다. 최고담보금액이 바로 53만 달러였던 것이다.
나는 우선 10만 달러를 보증금 명목으로 은행에 넣고 매달 1,200달러씩 갚아나가기로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식으로 20년인가, 30년을 갚으면 내 집이 되는 조건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한꺼번에 53만 달러를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보증금 10만 달러도 수중에 3만 달러밖에 없어 나머지 7만 달러는 후배에게 빌려 겨우 마련했다.
그리고는 큰 방 하나에만 딸들을 살게 하고 작은 방은 다시 세를 놓아 매달 500달러를 받게 했다. 나는 매달 700달러만 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96년 초 이 집이 호화주택으로 소문이 났다. 방 2개짜리 집이 어떻게 호화주택이 될 수 있나.
당시 신문에 실린 사진은 그 집 옆의 호화 별장이었다. 그 별장은 내가 봐도 호화 주택이었다.
내 집은 사진 귀퉁이에 기둥만 나왔다. 나중에 진짜 우리 집 사진을 찍어 언론사에 갖다 줘도 내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누가 왜 이런 식으로 나를 음해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정보원을 통해 알아보니 그 원인은 내가 신한국당으로부터 괘씸죄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정감사에서 당정간 합의된 내용을 놓고 정부를 욕하지, “정치는 코미디”라고 비아냥대지…. 하여간 내가 그들 눈에는 그렇게도 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나는 그 집을 3년 후인 92년 후배에게 넘기면서 돈은 나중에 천천히 갚으라고 했다.
아들 창원이가 교통사고로 죽고 나서 딸들이 모두 한국에 돌아오는 바람에 더 이상 그 집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그 후배는 83년 대치동 땅 사기사건 때 홍콩에서 나를 크게 도와줬던 터라 나는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놈이 매달 1,200달러를 은행에 집어넣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자 이자에 이자가 붙어 보증금 10만 달러는 모두 날라갔다.
내가 돈을 갚으라고 닦달을 하자 이 놈이 앙심을 품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신한국당에 ‘이주일이가 미국에서 호화주택을 구입했다’고 찔러 사태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97년 12월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2억7,560만원을 선고받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참 억울하기만 하다.
더욱이 내가 정치를 더 이상 안 하겠다고 하자마자 이 사건이 터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이 오싹해진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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