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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키친 캐비닛

입력
2016.12.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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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에서는 내각을 캐비닛(Cabinet)이라 한다. 16세기 영국 국왕의 정치자문(Privy council)을 맡았던 상ㆍ하원의 극소수 그룹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1607년 한 에세이에서 이들을 일컬어 캐비닛이라 처음 칭했다. 베이컨은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무분별하게 들여온 제도로 질병을 더 악화시키는 치료제”라고 했다. 은밀히 수상쩍은 일을 꾸민다는 의심에서 캐비닛을 부정적으로 봤다.

▦ 캐비닛은 여러 파생어를 낳았다. 집권당 내각에 문제를 제기하는 야당의 전문그룹은 그림자(Shadow) 내각으로 통한다. 미국에서는 국무, 국방, 재무장관 등 내각의 핵심 구성원을 응접실(Parlor) 내각이라 이름 붙였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자신의 정적을 내각 핵심에 앉히는 한편 인사 등 전권을 행사토록 해 내각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대선 경쟁자를 내각 핵심에 등용해 힘을 실어 준 것으로 유명하다. 오바마는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히면서 200여명에 달하는 인사 요구안을 다 들어줬다.

▦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소추안 답변서에서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씨를 키친(Kitchenㆍ부엌) 캐비닛에 비유했다. 미국의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이 내각과 갈등을 빚으면서 비공식 자문그룹과 국사를 논의하자 반대파는 이를 조롱해 키친 캐비닛이라 불렀다. 잭슨 이후에도 케네디, 존슨 등 미국의 여러 대통령이 비공식 자문그룹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 연설문 수정 등 최씨의 국정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끌어 온 논리지만 자신의 불통 스타일만 두드러지게 한다.

▦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소통 문제에 관한 기자 질문을 받고 장관, 청와대 수석들에게 “대면보고가 꼭 필요하세요?”라고 물은 박 대통령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하세요. 그에 따른 정치적 문제는 내가 다루겠다”며 2기 내각의 신임 교육부 장관 사기를 높이던 오바마 대통령의 내각ㆍ참모진 운영과는 많이 다르다. 백악관 직원들의 눈사람 스토커 유머로 임기 마지막 크리스마스 시즌을 즐겁게 보내는 백악관 주인과, 탄핵 배척 논리 개발에 골몰하는 청와대 주인의 처지 차이도 결국 거기서 비롯했을 터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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