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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건강 챙기는 우리도 계약직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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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건강 챙기는 우리도 계약직 신세”

입력
2018.05.08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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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마다 위탁기관 재선정 이유로

센터 직원 대부분 1년 단위 계약

이용자는 4년새 3배 가까이 증가

“직원들 사명감에 기대는 건 한계

지속성 위해선 위탁구조 손 봐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센터가 정상화되자마자 바로 시내버스기사들을 만나 상담하고 있습니다. 12월이 되면 또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니 속도를 내야죠.”

광주근로자건강센터의 주된 사업 중 하나인 ‘운수종사자 건강관리 사업’을 설명하는 문길주 사무국장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폐쇄 위기에 놓였던 센터를 겨우 다시 열었지만 앞날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센터를 위탁운영하던 조선대 산학협력단은 학내 사정을 이유로 2년 이상 근속한 직원 7명의 재계약을 거부했고, 이에 센터 구성원들은 ‘고용보장 없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며 2월 초 폐쇄 의사를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중재로 센터는 4월 어렵사리 다시 문을 열었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1년 계약직 신세다.

근로자건강센터는 건강관리에 취약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및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산업재해예방을 위해 2011년부터 설치됐다. 현재 전국 21곳 센터에 의사ㆍ간호사ㆍ상담심리사 등 각각 10여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업무관련 질병을 상담하고 예방사업을 하고 있다.

해를 더할수록 센터의 역할은 커지는 추세다. 7일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3년 3만3,804명이었던 센터 이용자는 지난해 8만9,531명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비정규직의 이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같은 기간 비정규직 이용자는 8,491명에서 3만1,66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5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피해를 입은 하청근로자들의 트라우마 관리도 경남근로자건강센터에서 맡았다.

그러나 산재관리 최전선에서 일하는 센터의 직원 상당수는 광주센터처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직접 운영하지 않고 대학 등에 위탁을 하는 구조인데, 매년 센터 실적을 평가하고 3년마다 위탁기관을 재선정하다 보니 센터 직원들은 대부분 1년 단위 계약을 맺는다. 2016년 계명대 연구팀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센터 직원들의 평균근속기간은 행정직을 제외하고 2년이 넘지 않았다. 특히 간호사와 임상심리사의 근속기간은 각각 17.1개월, 18.2개월에 그쳤다.

이는 근로자 건강관리사업의 안정성을 크게 흔들 수밖에 없다. 경기지역 센터에서 근무했던 상담심리사 이모(36)씨는 “심리상담이 필요한 노동자가 바쁘고 힘든 와중에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을 센터로 끌어들이는 데만 길게는 1년이 걸린다”며 “이렇게 겨우 신뢰를 쌓았는데 상담사가 계약만료로 떠나게 되면 후임자는 같은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심지어 상담이 종료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모 센터에서 근무했던 간호사 강모(40)씨는 “센터당 매년 1,000여명을 담당할 정도로 일은 많은데 처우는 불안하다 보니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비선호 직장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센터 고용조건 개선 문제는 2016년 공단 국정감사 때도 이미 지적된 사안이다. 하지만 공단측과 고용노동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지금껏 뒷짐만 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로자건강관리가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하는 사업인 만큼 고용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재의 위탁구조를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센터를 직원들의 사명감에만 맡기는 건 한계가 있다”며 ”정부나 공단이 직접 운영하거나 별도 기관을 세워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자건강센터 이용자 추이. 신동준 기자
근로자건강센터 이용자 추이. 신동준 기자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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