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아름다움의 백미는 역시 지붕의 매끄러운 곡선이다. 자연을 따라 달리는 듯, 종이 위를 휘돌아 치는 난의 잎처럼 유려한 모양새다. 특히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여 내려오듯 올라가고 돌아 치다 뻗어나는 육자배기 가락을 닮았다. 지붕은 ‘우레’에서 취한 것이라 하지만 지붕을 구성하는 기와는 섬세하고 미끈하며 곡선과 직선이 짝을 이루며 기왓골을 이루어 기둥을 타고 올라앉은 바다처럼 물결을 이루다 졸졸 소리 내 흐르는 시냇물을 이룬다.
이렇게 한옥의 지붕은 솟아오르듯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그 커다란 산세처럼 내달리는 선을 이루는 것은 세세한 곡선이 반복되는 기와이다. 작은 암키와와 수키와가 교대로 놓여 지면서 기왓등과 기왓골을 만들어 빗물이 원만하게 흘러내리도록 하는 기능 외에 이것들이 작은 골짜기들을 이루어 반복되면서 전체적으로 커다란 지붕의 곡선을 만든다. 작은 것들이 모여 커다란 지붕을 만드는 형국이다.
지붕에 올라가지 않고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기와의 각각의 쓰임새는 다르지만 모두에게 온갖 치장을 다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붕을 잇는 기와장이나 기와에 정성을 다했다는 것은, 장인들이란 무엇 하나 허투루 대하지 않았던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기와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문양이나 기법이 여간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산지와 시대, 사용처에 따라 무늬와 소재가 각각 달라 역사가와 미술사가들에게는 좋은 공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간 우리는 지붕은 보아왔지만 기와는 글쎄, 소 닭 보듯 별 생각 없이 보아왔다. 정작 지붕을 이루는 것이 기와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하찮은’ 기와의 문화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 ‘돌아온 와전: 이우치 컬렉션전’(~7월16일까지, 서울 부암동 유금와당박물관)이 그것이다. 기와라는 전통건축재의 일부로 일반사람들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는 유물을 전시하는 것도 신기한데 ‘이우치 컬렉션’이라는 외국인 이름을 붙이고 있어 더욱 신기하다. 그런데 그 배경을 알고 보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다룰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사실 우리 기와의 아름다움과 그 각각의 의미를 먼저 알아차린 것은 일본인이었다. 일본 내과의사인 이우치 이사오(1911~1992)의 이름을 딴 이우치 컬렉션은 실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기와를 수집했던 이토 쇼베(?~1946)에서 출발한다.
이토는 교토 사람으로 1910, 20년대에 한국기와를 열정적으로 수집했다. 일찍이 기와의 의미에 눈을 뜬 셈이다. 이렇게 모은 기와 중 1,071점을 선별해 1931년에 현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조선고와전관이란 전시회를 개최하고, 교토 시내 남쪽 자신의 별장에 ‘조선와전관’을 세워 상설전시를 하는 동시에 소장한 기와를 촬영하고 실측해서 ‘조선와전보’를 발간하려고 1939년 ‘견본’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1945년 오사카의 사업가 이마이즈미 도시아키에게 양도하였고 이마이즈미는 다시 이를 되팔려고 했으나 살 사람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1964년 이우치 이사오가 이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이우치는 효고현 아카시시 자신의 집에 ‘이우치고문화연구실’을 세우고 둘째 아들 이우치 기요시와 함께 한국의 기와를 연구하고 출판하는 일을 계속하여 1981년 자신이 소장한 기와와 전돌 2,229점을 수록한 ‘조선와전도보’(전7권)을 완간했다.
그 후 이우치 이사오는 1987년 이 도록에 수록된 주요 와전의 절반인 1,08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포함한 1,296점은 이우치 사후에 이를 잘 보호하고 관리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평소 한국의 기와를 수집해 중앙박물관에 기증한바 있는 유창종ㆍ금기숙 부부에게 2005년에 양도했다. 이로써 한반도를 떠났던 우리 기와가 물경 100여 년 만에 무사히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돌아온 기와와 전돌을 위해 부부는 2008년 부암동 산기슭에 유금와당박물관을 만들어 상설전시를 해왔다.
유금와당박물관은 2012년 설립된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공동으로 연구해서 ‘돌아온 와전 이우치 컬렉션’을 발간했고, 귀향해 국립중앙박물관과 유금와당박물관에 있는 이우치 소장품 중 300점을 선별해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 이우치 컬렉션의 백미들만 모은 것이 바로 이번 전시다. 어찌 보면 건축물의 하찮은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그 작은 기와의 면면에 성심을 다해 평안과 번영을 소망하는 문양을 새기고 조각한 것도 정성이지만 고구려와 백제 신라 그리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의 기와가 어쩌면 같은 듯 다르며 다른 듯 같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문화이며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 민족이다. 그리고 오늘날 다민족 국가로 변모해가면서 민족 아니 국민의 일체화 즉 국민을 통합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문화이다. 과연 오늘날 국민통합을 외치는 정치인들은 문화의 의미를 알기는 하는 걸까. 문화융성이라고 부르짖을 때 그 목적은 무엇이고 과연 어떤 문화를 융성시키자는 걸까. 게다가 외국에서 먼저 알아주고 상을 받아야 환호하는 우리의 문화속국주의는 어찌 할 것인가. 지난 100년 사이에 우리는 일본인이 했던 것처럼 기와와 전돌을 보호하고 지켜 낼 수 있었을까. 우리가 외치는 문화재 환수는 구호일까 아니면 선동일까.
조용하게 되돌아와 우리 앞에 선 기와와 전돌은 말이 없지만 그것을 보며 너무나 많은 생각과 할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박물관 마당에서 만난 홍매와 백매에 취한 탓으로 돌리고 싶다.
정준모 미술비평가ㆍ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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