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정치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26일 헌법개정안을 발의했다. 청와대가 사흘간의 쪼개기 설명 끝에 22일 전체 내용을 공개한 이 개헌안은 법제처 검토를 거쳐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UAE를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의 전자결재로 국회로 보내졌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안 발의를 시사한 지 두 달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국민헌법자특위를 꾸린 지 한 달여 만이다. 38년 만의 대통령 개헌안 발의 절차가 완료돼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문 대통령은 개헌안 발의를 급하게 밀어붙인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헌법파괴와 국정농단에 맞선 촛불광장의 민심을 지방선거와 동시에 헌법적으로 구현하겠다고 대선 때 약속했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국회의 개헌작업에 진척이 없어 개헌시간을 맞추려면 대통령 발의가 불가피하다, 지방선거와 개헌투표를 동시 실시하면 투표비용 절감은 물론 투표 참여도를 높일 수 있고 이후 지방선거와 대선 시기도 일치시킬 수 있다, 현직 대통령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국민을 위한 개헌이다 등이 그 내용이다. 앞서 문대통령은 국회가 4월 말까지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마련한다면 대통령 발의를 철회하겠다고 말해 '국회 패싱' 비판도 일축했다.
사실 문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 자체는 '87체제' 이후 변화된 사회경제적 상황과 정치문화 의식을 반영해 서둘러 고쳐야 할 내용을 적잖이 담고 있다. 기본권 및 국민주권 강화, 선거연령 인하, 지방분권 확대와 경제민주화 강화,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 및 권한 분산, 국회권한 강화 등이 그것이다. 반면 진보적 어젠다를 급하게 쓸어 담다 보니 국가의 가치규범이 돼야 할 헌법이 집권세력의 당헌ㆍ당규처럼 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가 불가피했다고 이해한다고 해도 '강박관념'에 얽매인 나머지 절차와 내용 모두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는 줄곧 대통령의 독자 개헌안 발의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해 왔다. 개헌공약을 파기하고도 '사회주의 개헌 쇼를 막는 국민저항 운동' 운운하는 자유한국당의 뻔뻔한 막말과 선동에 끌려서가 아니다. 문제는 개헌의 동력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대통령의 발의가 개헌의 동력을 이어 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상되는 현실은 동력의 실종이다. 발의가 목표가 아니라 실현이 개헌의 목표라면 청와대는 지금부터라도 야당과의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해 국회 발의가 작동하도록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8인이든 10인이든 여야 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해 개헌안 합의 및 투표 시한을 못 박을 필요가 있다. 서두르면 '6월 발의-7월 투표'도 가능하고 대통령 임기를 조정하면 대선ㆍ지방선거 동시실시도 못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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